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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00일의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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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추천은 잘해요
1.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오랜만에 고전을 읽었다. 고전이라 할 만하다. 창비세계문학전집의 ‘미국’편에 수록된 허먼 멜빌의 단편인데, 읽고 나면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찬다. 바틀비라는 인간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찬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 말투를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더 듣다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결국엔 그가 왜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필독서 <필경사 바틀비>다. 2. <500일의 썸머> O.S.T. 영화 <500일의 썸머>가 명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편집은 재치가 넘쳤지만, 흔한 사랑 이야기를 이리저리 뒤섞어 흥미롭게 보여준 건 사실이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사랑에 대한 통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음악은 영화 시작부터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딸꾹질 중독자 같은 레지나 스펙터의 목소리로 시작해서 파이스트의 귀여운 목소리로 흥을 내다가 이 앨범의,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스미스의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에 이르는 순간, 사랑에 대한 통찰 같은 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2층버스가 우리와 충돌하고, 그렇게 네 곁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라고 노래하는 목소리 앞에서 사랑의 통찰이란 과연 무슨 소용일까. 3. 김천 과하주 내 고향의 술이다. 이번에 처음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이 들고 좋은 점은 술맛을 알아간다는 거다.
김중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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