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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21 19:46 수정 : 2011.05.01 19:04

<나는 가수다>를 연출한 김영희 문화방송 피디가 출연진 섭외를 비롯해 프로그램 준비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던 상황을 생생한 표정과 몸짓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나는 가수다’ 김영희 피디의 직격 토로 ‘쿨한 딴따라 철학’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47화 나는 딴따라 피디다

건방진 ‘직설’의 건방진 프로필. 오늘 손님, 김.영.희. 문화방송 예능 피디. 본업보다 ‘쌀집 아저씨’로 더 잘 알려진, 올해 쉰하나! 대화 중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을 땐 영락없는 열한살! 신이 내린 장난기를 갖고 태어났으며, 스스로를 ‘예능인’이라고 부르는 ‘딴따라 피디’. 남이 어렵다고 하면 더 흥미가 생긴다는 전형적인 청개구리.

항상 남과 다른 길을 가려고 고민한 결과 탄생한 프로가 199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양심냉장고’. 그 뒤 ‘칭찬합시다’,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기적의 도서관)’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공익 예능’의 새 장을 개척. 지난해 책임피디를 맡으며 1년간 현업을 떠났지만 “타고난 감”으로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나는 가수다>를 들고 당당하게 복귀. 늘 그랬듯 ‘공익적 마인드’로 가수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줬으나, 스스로 만든 원칙을 어기는 ‘비공익적’ 결과를 초래.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피디 생활 최대 위기를 맞는 듯했으나, 이때 깜짝 등장한 문화방송 경영진이 ‘피디 교체’라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그는 ‘나쁜 놈’에서 하루아침에 ‘희생양’이 돼. 그러나 동정표를 받는 대신 보란 듯이 ‘재도전 무대’를 완벽한 감동으로 연출해냄으로써 ‘나는 김영희다’를 증명.

이제 그는 모든 논란을 뒤로하고 25일 남미로 연수를 떠날 예정. 출국 전 그동안의 심경 고백을 듣고자 붙잡아 앉히니 웬걸, 자신은 <나가수> 방송 네번 만에 “잘려도” 오히려 행복하다는 쿨한 남자의 종결자. ‘새로운 세상’을 찾아 히말라야와 아프리카를 다녀오더니 “평생 살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를 향해 또다른 모험을 찾아가는 당신은? 그래도 역시 쌀집 아저씨. 진행·정리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서해성(이하 서) 왜 갈라파고스(다양한 생물이 살아 ‘자연사박물관’이라 불리는 남아메리카 군도)인가요?

김영희(이하 김)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받은 곳이잖아요. 진화론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현장에 가보고 싶은 거죠, 괜히.

한홍구(이하 한) 원래 도전을 좋아하는지요?


내가 있는 이곳에서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걸 좋아하죠. 히말라야나 아프리카도 그래서 간 거고요. 쉽고 편한 것에는 별 매력을 못 느껴요. 항상 새로운 걸 찾는 편이죠.

김건모는 노래 재도전을, 김영희는 인생 재도전을 시작했군요.(웃음)

평소에는 어떤 ‘과’인가요?

저는 완전히 예능인이에요. 피디 데뷔 때부터 계속 예능만 했죠. 제가 워낙 밝고 가볍고,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라, 쇼가 좋더라고요. 딱 내 스타일·성격대로 할 수 있으니까 유쾌하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거든요.

2년간 함께 일해 봤는데, 반박하자면 정작 김 감독은 제작 현장에서는 전혀 웃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말 그대로 야전지휘관 같아. 촬영에 들어가면 건드릴 수 없어요. 도리어 웃음 하나를 만들어내려면 저렇게 진지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하죠. 일 끝나면 바로 둔갑하죠.

아, 저 안 진지하다니까.(웃음)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예능 나온 뒤 고맙다고 해 

김영희표 ‘공익 예능’의 시작이 바로 양심냉장고잖아요. 당시 예능프로는 그냥 재밌는 게 다였거든요. 근데 양심냉장고는 보고 나면 무언가 남는 게 있었어요. 예능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 게 김 감독인데.

처음부터 거창하게 예능에 사회성을 담겠다거나 한 건 아니에요. 마음속엔 항상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먼저였어요. 양심냉장고도 그렇고. 사회성을 담으면 일단은 새로운 게 되니까.(웃음) 또 딴따라 피디 생활 5~6년 하면서, 내가 만든 방송이 한번 웃고 공중으로 흩어져버리는 것에 대해 공허함도 느꼈죠.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내용, 사회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중요한 건 그래도 저는 딴따라다, 공익성을 어떻게 ‘재밌게’ 담느냐, 그걸 잊지 않았던 것 같아요.

96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 예능프로에 정치인이 나온 것도 처음이지 않았나요?

정치하는 사람 중에서도 국민들이 보면 재밌어할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제 생각이 맞았던 것 같아요. 엠시 이경규씨가 김 총재(당시 새정치국민회의)와 이희호 여사를 계속 웃겼죠. 방송 나간 뒤에 김 총재가 저한테 전화해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30년 정치생활 하면서 티브이에 자기가 웃는 모습이 처음 나갔다는 거야.(폭소) 정몽준·이윤성 한나라당 의원도 찾아갔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웃지 않는 게 ‘도리’였던 정치인들 모셔다놓고 오락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돼요. 그러면 다 재밌어해요. 포장하려니까 안 되는 거죠. 시사보도나 교양프로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이니까 시청자들이 흥미있어 한 거죠. 사람 이야기는 100%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성공이야.

근데 왜 딴 사람들은 김 피디처럼 그렇게 쉬운 걸 못할까요?

그 대목에 조금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카메라가 막 돌아가고 있는데도 계속 재밌게 얘기해요.

그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그건 모르죠.(웃음) 개인적으로 좋든 싫든 어떤 사람을 취재하고 방송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 사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한 애정을 갖고 시작해요. 그 사람을 그냥 사랑하는 거야.

실제로도 연애하듯이 눈을 맞추고 떼질 않죠. 내내 웃으면서.

정말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촬영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죠.

서해성 작가와 ‘기적의 도서관’ 프로그램을 같이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군요.(웃음)

대중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해요. 시청률로 죽고 사는 게 피딘데.

감으로 되는 건데….

그 감을 오늘 구체적으로 털어놔야 돼요. 안 그러면 못 가.

초등학교 때 굉장히 개구쟁이였는데, 지금도 현장에서 그대로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동심을 갖고 있지만 다 잊고 살잖아요. 어린 시절 장난치고 익살스럽게 행동했던 기억들이 곳곳에 스며 있는 거죠.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도 그런 게 녹아 있지 않았을까 해요.

티브이는 올드매체, <나가수> 타깃은 42살 아줌마

김 피디 나이에 예능 일선에서 뛰는 사람은 없죠. 젊은 사람과 호흡 맞추기도 어려울 텐데, 감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나이 들면 고집 생기고 대중을 끌고 가려는 성향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지난해 책임피디로 있으면서 후배들 연출하는 걸 본 게 오히려 굉장한 도움이 됐어요. 그들의 생각과 트렌드가 읽히는 거예요. 한마디로 티브이는 진짜 올드매체가 됐어요. 젊은 사람들은 티브이 안 보고 다른 데로 떠났어요. 스태프들에게 “<나가수>의 타깃은 42살 아줌마”라고 공언했어요. 그냥 ‘40대 아줌마’면 임팩트가 없어요. ‘42살 아줌마’라고 정하면 ‘그들이 뭘 하지?’ 하고 생각하게 돼요. 80~90년대 문화에 향수를 가진 사람, 지금 애들이 중학생 정도 되는 부모, 하고 여러 의미를 발견하게 되죠.

오늘날 대중들은 텔레비전을 어떻게 소비하는 것 같나요?

가치없는 것으로.(웃음)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재미라도 있어야 보죠. 그런 걸 주지 않으면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없어요. 이번에는 ‘노래를 통한 감동’을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된 거예요. 기분 좋더라고요.

요새 예능은 유재석·강호동씨가 대세인데, 이들 없이 어떻게 일요일 저녁 프라임타임을 끌고 갈 수 있었는지? 엠시 자체가 없기도 하고.

남들과 다른 프로를 해야 성공한다고 했잖아요. 가장 기본이 캐스팅이에요. 저기 나오는 인물이 여기 또 나오면 차별화가 안 되잖아요. 유재석·강호동·이경규와 대적하려면 그 사람들 없는 프로를 만들어야죠.

여느 쇼에 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를 한 무대에서 만나기는 힘들죠. <나가수>는 보여주는 가수가 아니라 부르는 가수들 중 진짜 꾼들이 모인 거고. 그런 점에서 퀄리티로 승부를 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향도 그렇고.

가수들 섭외할 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가수에 맞춰 음향감독만 다섯을 붙여줬어요. 음향에 쓴 돈만 보통 음악프로의 5배라는 거죠. 출연진들은 다른 음악프로에 다 나가본 사람들인데, 한결같이 정말 고맙다고 하고 무대를 내려갔죠.

그렇게 많은 돈을 썼다니, 새로 입봉한 젊은 피디는 만들기 어려운 프로였군요. 대한민국 최고 가수들이 초긴장하고 집중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이 감동의 원천이었죠. 날고 기는 가수들을 떨게 만들었는데, 김영희 피디가 가장 떨렸던 때는 언제였나요?

섭외할 때가 가장 떨리고 중요한 순간이죠. 백지영씨 빼고는 안면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가수마다 최소 서너번, 많게는 열번 이상 만났죠. 섭외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소라씨 매니저한테 딱 전화가 왔어요. 받기 전엔 벌써 가슴이 뛰죠. “저 이소라 매니접니다” 하기에 제가 “어… 어떠십니까” 그러는데, 저쪽에서 “이소라씨가….” 이때 어떻겠어요.(웃음) 속으로 ‘이거 끝나는 거 아니야’ 하는데, 저쪽에서 “…하시겠답니다” 그러는 거예요. 제가 큰소리로 “감사합니다!” 그러면 같이 있던 스태프들이 “와” 하고 난리 났죠.(웃음) 그걸 7번이나.(폭소) 

‘재도전’은 오직 시청자를 위한 결정이었지만 

김 피디는 자타가 공인하는 ‘감’을 갖고 있는데, <나가수>에서 김건모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줬을 때, 이렇게 반발이 있으리라고 예상했나요?

예상을 훨씬 뛰어넘긴 했지만, 제작진 모두 논란이 될 거라고는 당연히 예측했죠.

그런데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했죠?

피디들이 판단을 하는 기준은 언제나 전적으로 시청자예요. 김건모 가수가 재도전해서 무대에 다시 서는 것이 과연 시청자한테 도움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를 고민했죠.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도움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한 거죠. 좋은 노래를 더 듣게 되리라는.

서바이벌이란 이름을 단 프로그램인지라 시청자들은 이른바 ‘원칙을 어긴’ 것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보였죠. ‘공정사회’에 위배돼서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웃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능은 다른 프로보다 더 시청자에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죠.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실수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로서는 그 다음주에 재도전 방송을 보면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우리의 진심이 전달되면 그게 훨씬 더 감동을 주는 무대가 될 거라 생각한 거죠.

여론이 들끓었다가 재도전 방송 보고 다시 싹 뒤집혔죠.

천하의 김건모가 자기 노래 인생을 다 걸고 노래 부르는 무대를 만들어낸 게 재도전인 거죠. 시청자들이 다소 배신감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녹화 편의나 가수를 위해 결정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회사가 피디 교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바로 내렸는데, 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나요?

예측을 할 수 없는 결정이었죠. 그런 선례가 없어요. 그런데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어느 결정이 더 좋았는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죠.

들리는 말로는 경영진에서도 피디를 교체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도 사장이 밀어붙였다던데요.

어차피 최종 결정은 사장이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는지는 저야 잘 모르죠.

본의 아니게 <나가수>를 물려줄 때 후임에게 어떤 말을 하셨어요?

신정수 피디도 상황이야 잘 알고 있는 거고. 제가 만들어놓은 걸 발전시켜야 하니까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가겠다”고 했죠. 가수들도 동요하지 않게 했고. 저는 뭐든 처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는 거고, 그걸 끌고 가면서 발전시키는 재주는 신 피디가 있죠. 역할 분담이 잘 된 거죠.

창업 전문 피디군요.

이 프로그램 만들어서 시청자들한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해요. 프로그램 준비부터 방송까지 지난 4개월간 거의 잠을 못 자고 일했어요. 근데 너무 행복했어요. 연출·작가가 총 13명인데 며칠씩 밤새고 나면 다들 도둑놈처럼 수염이 더벅더벅 해가지고 맥주 마시러 가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이게 진짜 사는 거죠. 그래서 네번 만에 잘리든 뭘 하든 상관없어요.

<나가수>로 정말 다양한 반응이 나왔는데, 이 논란이 남긴 건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진짜가 별로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잖아요. 다 껍데기에 둘러싸여 사는 것 같아요. 그런 허식과 가상에서 살다 보니까 더 ‘진짜’를 갈망하는 거죠. <나가수>는 진짜 노래를 들려줬잖아요. 가짜에 둘러싸여 살지만 진짜에 대한 동경이 있는 그 지점을 딱 건드려준 것 같아요.

아무리 훌륭하게 가공된 것이라도 그보다는 진짜에 감동하는 게 당연하죠. 삶은 매순간 피할 수 없이 진짜니까. 너무 진짜여서 괴로운 거죠.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팔리는 거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거짓 공정에 대한 대중의 반사적 반응이라고 봅니다. 대중은 이미 충분히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짜증과 혐오가 극에 달해 있었거든요. 그걸 고작 티브이로 대리 성취하던 참인데, 요컨대 ‘공정사회’가 티브이(<나가수>)를 공격했다는 거죠. 

잘 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파 

<무한도전> 하는 예능 후배 김태호 피디 결혼 때 주례를 섰잖아요. 다들 재기발랄한 그를 좋아하는데.

평소 얘기해보면 생각이 깊고 예능에 대한 철학이 있어요. 그냥 웃기려고만 하면 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 없어요. 김태호는 자기가 왜 무한도전을 만드는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잘 만드는 거예요. 허투루 하는 게 아니죠. 그런 피디 별로 없어요.

대학 때 광주항쟁 관련 유인물을 뿌리다 걸린 적 있죠?

아, 있죠.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랄까, 성장기 기억이나 생각 같은 게 피디 활동에 아무래도 영향을 주겠죠?

우리 때 학생운동 안 해본 사람 있을까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시대였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만했죠. 삶이나 프로그램에 무언가 흔적을 남겼으리라고 봐요.

김건모가 가수 인생을 걸고 노래 부르는 절절함을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보고 또 감동해요. 그런데 용산이나 쌍용차의 절절함은 보려고 하지 않죠.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사람의 절박함이 잘 전달되지 않거나 외면당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매체가 갖는 힘이 있다면,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접근방식은 예능이든 교양이든 다양하겠죠. 저는 주특기가 예능이기 때문에 예능에서 감동과 공익적 메시지를 주는 것에 주력해야죠. 시사교양이나 다큐 쪽은 그런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중에는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적어도 고발과 폭로 방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체질이 아니다, 김 감독이 자주 해온 말이죠?

잘못된 거 지적하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너무 많이들 하니까. 잘 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김 감독은 방송하고 저는 짓는 데 책임을 졌던 ‘기적의 도서관’ 당시, 제가 하던 얘기가 있었죠. “지금까진 예능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김영희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능에서 감독이라 부를 수 있는 첫 사람이다.” 한번 웃고 버리는 일회용 전파가 아닌, 밥상 같은 웃음과 감동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만들기 바랍니다.

갈라파고스! 매 순간의 삶이 진화여야 한다고 믿습니다.(웃음)

■ 직설잔설

웃음 내력

한홍구, 김영희, 서해성

쓴웃음은 입술에 해롭다. 이윽고 욕설과 침을 돋우게 하는 터다. 찬웃음은 위에 해롭다. 경멸은 체념과 한 가지에서 뻗어 나오는데, 밥맛이 떨어지게 한다. 억지웃음은 뇌에 해롭다. 망각을 강요하는 까닭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코웃음은 옆구리에 해롭다. 웃음을 파는 이는 삶이 해롭다. 말하는 꽃(해어화) 중 기구하지 않은 팔자가 몇이겠는가. 비웃음은 대중에게 해롭다. 여러 사람의 비웃음은 권력을 향한 능멸이다. 큰 웃음을 이끌어내는 광대는 이때 나타난다. 세상이 썩어야 웃음이 맛있는 법이다.

표정근을 움직이게끔 하여 먹고사는 광대 중 첫 이름으로 명진과 박응수를 꼽는 게 마땅하다. 해방 직후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는 예언자적 웃음은 시대를 통렬하게 꿰뚫고 있다.

웃음마저 우민화 통치술로 둔갑시켜낸 게 유신권력이다. 비실이 배삼룡은 ‘조국 근대화’에 역행하는 짚신을 신고 등장하여 대중적 자기모멸을 통한 웃음을 선사했다. 합죽이 김희갑은 ‘에이 모르는 소리’라는 말로, 막둥이 구봉서는 ‘이거 되겠습니까’로 웃음 소비자에게 ‘교화’를 요구해낸 측면이 크다. 웃음이 권력자를 향할 때 대중은 웃음을 잃고 만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 있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십니다’에서 사이다를 처음 생산한 인천의 역사성에 기초해 서민의 ‘가오’를, ‘고우투더마운틴 캐치더타이거’(산에 가야 범을 잡고)를 읊조려서 영어 판치는 세상을 랩으로 맘껏 비꼰 이는 극장 간판장이 출신 살살이 서영춘이다. 그의 웃음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같은 생활이 살아 있었다. 이주일의 웃음은 권력과 ‘유사’하여 한동안 ‘테레비’에서 제거되었다. 밥 같은 웃음, 약 같은 웃음을 처방한 웃음 의사들이다.

몇몇 희극배우의 반복적 실수에 의존해오던 웃음을 공적 즐거움으로 빚어내려면 고도의 기획이 필요하다. 김영희는 연출가가 그 오락성을 창조해내는 원천이란 걸 본격 증거해왔다. 진짜 감동으로, 티브이를 대중에게 돌려준 것이다.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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