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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번 재보선 결과에 대해 “야권 단일화를 하면 국민이 밀어준다는 신호”라며 “특히 당내 기득권 세력화돼 있는 386세대가 야권 단일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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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말하는 대선 패배 3년과 4·27 재보선 이후 민주당의 길
[한홍구-서해성의 직설] 제48화 잘 지고 잘 이기는 법
지더라도 잘 져야 한다. 경기 내내 힘 한번 온전히 써보지 못하고 상대의 공격에 끌려 우왕좌왕하고 말면 승패를 떠나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잠시 역전도 해보고, 끝까지 따라붙고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보여줄 땐, 지더라도 관중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정동영(58) 민주당 최고위원은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무참히 깨졌다. 승패를 떠나 감동이 없는 경기였다. 그는 민주정권 10년을 잇는 계주에서 바통을 놓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민주주의의 주행로도 휘어지거나 왔던 길을 역행하는 상황으로 치달아갔다. 패장이 되어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2년 뒤 고향 전주에서 국회의원 재선거에 당선해 정계로 복귀했다. 그는 제대로 졌고 제대로 이긴 것일까?
정치를 하기 전에 정동영은 <문화방송> 기자였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그는 사고 발생 3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해 “맘대로 하라”는 회사 지시만 받고 원고도 없이 쉬지 않고 종일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잔불을 꺼야 합니다”라고 방송하면 곧 소방차가 나타났다. 자원봉사자들이 철근을 끊어낼 장비가 부족하다고 하면 “절단기가 필요합니다”라고 외쳤다. 소방서, 경찰서, 시청 등 관공서들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그는 사고 중계가 아니라 현장 지휘를 한 셈이었다.
4·27 재보선 앞뒤로 두번 그와 함께 민주당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재보선에서는 이겼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더 큰 시합을 앞두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기자 시절 취재 현장에서 보여준 정확한 상황 판단과 위기관리 능력이 아닐까.
진행·정리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한홍구(이하 한) ‘그때 이야기’는 거의 안 하셨죠?
정동영(이하 정) 지난 3년간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잠들던 사람인데 한동안 심한 불면에 시달렸죠. 1년쯤 이곳을 떠나 미국에 공부하러 나가 있었더니 차츰 나아지더군요.
서해성(이하 서) ‘그 후 3년’이란, 한 사람이 견뎌내기에는 퍽 무거운 세월이었을 텐데. 선거 패배는 많은 걸 바꾸어놓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죠.
정 실패를 통해 크고, 많은 걸 배웠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동영은 실패를 아는 정치인이다.
한 정치로 돌아오는 방법이 매끄럽진 않았는데, 다소 조급하고 구차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정 인정합니다. 당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팽팽했어요. 그래도 정치를 계속 하려면 손해가 나더라도 욕먹는 거 감수하겠다고 결심했어요. 하여튼 그래요. 그때 한 교수가 미리 좀 충고해주지 그랬어요.(웃음)
서 정치하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게 정치 안 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배에서 노를 젓는 것에 빗댈 수 있을까요. 계속 저어야만 하는 운명 같은.
9·19 공동성명에 재 뿌린 미국
서 엠비 정권 3년을 짚어봐야 하는데, 경쟁했던 후보를 나무라기보다 다만 내가 당선됐더라면 어땠을 것이라는 얘기를 해보죠.
정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어쨌든 10년간 물꼬를 터서 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표류선이 됐잖아요. 민주주의가 실종되고, 남북관계 파탄 나고, 사회는 양극화되고…. 남북관계만 해도 지금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만주는 가고 있을 텐데.
한 적어도 연평도 포격사태 같은 건 안 일어났다?
정 연평도가 아니라 북방경제시대가 열렸겠죠.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끊는. 북은 2000년부터 전환을 시도했어요. 제가 평양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만나(2005년 6월) 6자회담으로 끌어내고, 9월19일 공동성명이 나왔잖아요. 2007년에는 2·13 합의, 10월4일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 그동안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있어도 미국에 부시 정권이 들어서 있는 등 국제적으로 시기가 서로 안 맞았어요. 마침 오바마가 당선되고 때가 좋아지니까 덜컥 우리가 정권을 내줬죠.
서 그러길래 왜 지셨나요.(웃음)
정 그게 한스러운 대목이에요. 그게 한스러워.
한 정상회담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가서야 늦게 이뤄진 것도 안타깝더라고요.
정 북한 대표단이 국립현충원 참배(2005년 8월15일)를 하러 내려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정상회담 날짜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상황을 좀더 보자고 하더군요. 당시 6자회담이 진행중이었죠. 어렵게 타결된 9·19 공동성명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미국 재무부에서 “북한은 불량국가다, 100달러짜리 위조지폐(슈퍼노트) 만들고 마약거래해서 대금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은닉했다”고 발표했어요. 6개국이 다 같이 “건배” 했다가 12시간 만에 엎은 거죠. 사실 그 정보도 한국 국정원이 수년 전에 제공한 거예요. 서랍 속 묵은 정보를 꺼내서 흔들어버린 거죠. 남북 문제나 6자회담 문제는 9·19 공동성명이 깨진 책임이 어디 있는가를 짚으면 자연스럽게 풀려요.
한 민주화돼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이 피부로 느끼기엔 부족한 게 있어서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말도 나왔죠. 마찬가지로 기차 타고 만주 가면 좋죠. 근데 월차도 못 내는 비정규직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거죠. 남북관계 풀리면 먹고사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요?
정 우리가 반쪽짜리 섬 경제를 갖고 여기까지 왔는데 통일되면 태평양 경제와 북방 경제라는 양날개가 생기는 거죠. 일자리도 새로 생기고 중소기업은 살판나는 거죠. 기차 타고 만주·시베리아 가는 시대면 적어도 지금 같은 실업자는 없다는 거죠. 군대를 모병제로 갈 수도 있는 거고.
서 모병제, 세다!
엠비 정부는 ‘재벌 하도급 정권’
서 역동적 복지 얘기도 자주 말해왔는데, 여전히 추상적이고 어렵거든요.
정 쉽게 말해 헌법대로 하자는 거예요. 헌법 119조2항.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떡볶이집, 꼬치구이집, 문방구 같은 업종마저 대기업들이 잠식하고 있어요. 펄 벅의 소설 <대지>에서 메뚜기 떼가 싹 쓸어가듯이.
한 재벌을 공룡도 아니고 메뚜기에 비유하다니, 자존심 상하겠네.(웃음) 근데 유재석씨한테는 미안하다고 하세요.(웃음)
서 한국에는 119가 두 개 있죠. 불났을 때 전화하는 119, 다른 하나는 헌법 119. 서민을 구해줄 수 있는 진정한 119는 헌법이죠. 헌법이야말로 명문화된 국민의 명령이죠.
정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생활을 들여다보면 먼지가 뽀얘요. 재래시장·골목상가들은 공룡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초식동물 신세죠. 대신에 이 정부 들어서 재벌 10대 계열사가 400개에서 600개로 늘어났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이 정권은 ‘재벌 하도급 정권’이에요.
한 문어다리가 8개에서 12개로 된 거죠. 지금 하신 말씀이 지난 대선에서 쟁점화가 됐더라면, 이명박 후보의 “부자 되세요”식 공약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텐데요.
정 그 대목이 뼈아픈 거죠. 노동 유연화, 규제 완화, 민영화, 자유화… 이런 흐름의 한계 속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구조 자체를 바꾼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 인정합니다. 2008년 9월 미국 월가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대선 당시 인식이 철저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죠.
한 대선 패배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위기까지 겹치면서 인식이 바뀐 건가요?
서 중도적 태도를 견지해서 두루 표를 얻겠다는 뜻이 있었던 건데, 문제는 굳어 있다고 믿은 전통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데 있었죠.
정 참여정부 노선을 뛰어넘지 못했고, 2007년 대선은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나기 불과 9달 전이었는데, 그게 절벽으로 가고 있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한 뒤늦었지만 인식 변화를 겪었는데, 그때 같이 싸웠던 동료 장수들의 생각은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 아직 멀었죠. 참여정부 땐 김근태 의원의 주장대로 분양원가 공개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이었죠.
서 민주당이 지금보다 더 진보적인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지난 대선 때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나올 겁니다.
정 헌법 119조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서 물, 공기, 햇볕, 집 따위는 시장방식에 따르는 것 자체가 자연법에 위배되는 거죠. 그건 체제나 사상 이전에 자연이 생명체에게 준 거죠. 파탄에 이른 대학등록금, 물가, 전셋값 같은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4대 강에 쏟아붓는 24조원이면 대학 무상교육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정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권리로 보는 게 맞죠. 브라질도 등록금이 없는데 결국은 우리도 등록금 없는 대학으로 향해 가야 해요. 주택도 공공부분이 5%인데 최소 20%는 돼야 하고요.
한 이 정부 들어와서 훨씬 가혹해졌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정말 서민과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이를 쉽게 돌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민주정권이 신자유주의의 길을 닦아놓고 현 정부가 조금 세게 가속페달을 밟은 거죠.
정 정확한 말씀입니다. 이제라도 길을 바꿔 제대로 가야죠.
국민은 엠비를 버렸고 역사는 확신범이 바꾼다
서 기자 시절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날 폐허 더미 위에서 원고 한 줄 없이 보도를 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고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분명 더 쉬운 문제가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전주 버스파업. 전주에서는 “민주당이 토호와 유착돼 있다. 그래서 해결이 안 된다”는 비난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며칠 전에는 고공농성 현장에 직접 올라가기도 했죠?
정 제 지역구이기 때문에 제일 속 타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접니다. 핵심은 노조를 인정하느냐인데, 법원 판결은 노조를 인정하라는 거고 노동부 지침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노동부는 정권이잖아요. 현 정권의 반노동정책의 뿌리가 보이죠. 버스노조가 합법노조라는 걸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전주시장에게 노사 합의에 노력하라고 공문을 보내는 등 여로모로 애를 쓰고 있어요.
서 4·27 재보선 결과 강원도지사에서 최문순, 만년 한나라당 지역인 줄 알았던 분당에서 손학규, 순천에서는 민노당 김선동 야권단일후보가 이겼습니다. 김해는 아쉽게 됐지만요.
정 국민이 위대합니다. 국민은 엠비와 엠비 정책노선을 버렸습니다. 넥타이와 자영업자, 서민이 모두 나서서 엠비가 가는 길이 틀렸다고 확인시켜준 거죠. 민주당은 오늘 하루만 웃고 내일부터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합니다. 한나라당과 1 대 1로 맞짱 뜨면 이길 수 있다! “하나로 뭉쳐 맞짱 뜨면 내년에 정권을 주마” 하고 국민들이 보내주신 신호거든요. 이를 위해 당장 5월 중에 야권은 복지동맹·평화동맹으로 가기 위해 정책연합원탁회의를 만들어야 해요. 단순 연대보다는 단일정당으로 가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국민이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역사는 회의론자가 바꿔본 적이 없어요. 확신범이 바꾸는 겁니다.
한 김해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정 이번에 1 대 1을 만드는 과정이 아름답지 못했어요. 야권단일후보 이봉수가 승리했어야 엠비 심판 그림이 완성되는데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야권이 더 강하게 뭉쳐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이죠. 혼자 가지 말고 여럿이 함께 가야 합니다.
서 민주당이 대통합과 정권교체의 길로 가려면 몇몇 정치가끼리의 합종연횡에 그치지 말고 정책과 방향 전환에 온전히 동의하고 행동해야 할 텐데.
정 자랑 하나 하자면 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전면 재검토’로 끌고 왔어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민주당과 진보세력의 간극이 한강이었다면 이제 샛강으로 좁혀졌죠.
서 시민사회나 진보정당은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죠. 그게 나타난 게 쇠고기 문제, 촛불민심이죠. 이를 끌어안지 않은 민주정치의 내일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세력 통합에 성공하려면 생동하는 정책이 우선 거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거죠.
정 원탁회의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력을 다해야죠. 손학규 대표는 물론 여러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또 이해를 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그렇게 갈 겁니다.
386은 이미 기득권 세력, 그들이 탈바꿈해야
서 며칠 전 조사에서 대선주자 선호도 4위더군요. 지금 대중은 정동영을 뭐라고 느낄 거라고 보는지요?
정 빚쟁이죠.
한 정 의원 자신의 빚만 생각하면 안 돼요. 회사 부도 나면 사장만 빚쟁이 되는 것 아니잖아요. 관련 기업도 넘어가고, 종업원들은 목 매고, 약 먹고….
정 지난 대선 때 투표하러 안 나오신 580만 유권자 분들에게 큰 빚을 졌죠. 투표하신 분들께 진 것과는 다른 빚이죠. 어려운 사람 더 어려워지게 만든 빚, 역사에 대한 빚이죠. 수천수만번 던진 자문이 ‘왜 떨어졌는가’입니다. 역사에 고백하건대 2007년에는 온전히 꿰뚫어보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바깥으론 평화체제, 안으로는 복지국가! 보수와 1 대 1 맞짱 떠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이전과 비길 수 없이 훤히 보여요.
한 민주당이 토호처럼 돼버린 성격을 극복하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민주당을 어떻게 바닥에서부터 진보적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답을 줘야죠.
정 비정규직 850만, 자영업 600만, 청년실업자 400만, 농민 400만 해서 2200만명이에요. 경제활동 인구 80%가 2 대 8 사회에 있어요. 이들의 아우성을 대변해야만 해요.
서 헌법에 근로의 의무가 있습니다. 일하는 게 의무라는 거죠. 다른 의무는 안 지키면 강제하고 징벌을 주는데 유독 이 의무만은 온전히 수행해내고자 해도 어려운 실정이죠. 국가와 자본은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고 여기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민주당도 물론.
정 지금 민주당이 단독 집권당이 될 만한 역량이 있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부족하단 말이죠. 재보선 이후 민주당은 당권 다툼하는 전당대회로 가느냐, 새로운 정치세력과 함께 가는 창당대회로 가느냐 기로에 서 있어요. 창당대회 쪽으로 가야 민주진보연합정부를 만들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거죠. 헌법정신을 구현하려면 말이죠.
한 현재 민주당은 현상유지파가 다수로 보이는데요. 이제 486이 된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정 쓴소리하자면, 여당 10년간 이들이 당내 개혁세력이 아니라 기득권화돼 있었단 말이에요. 지금 이들이 어떤 길을 가느냐가 중요해요. 486 정치인들이 개혁과 새 길을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하죠.
서 주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인데, 도리어 70년대 선배들보다 더 보수적·보신적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려워요.
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어요. 민중적 성격을 내려놓고 전투성도 흐려지니, 엠비하고 특별히 각 안 세우고 적당히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워요. 사실 그러다 지난 총선에서 다 떨어진 건데….
정 386이 쇄신정풍의 선봉대가 됐어야 했죠.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 창궐하고 에프티에이 할 때 촛불을 들어야 했어요. 저도 한없이 부끄럽지만, 후배들이 현상유지 세력으로 눙치고 있을 게 아니라 복지국가 단일정당의 주체세력으로 앞장서야 하는 거죠.
서 ‘못생긴 자식은 어머니가 없다’는 라틴 속담이 있습니다. 어머니에겐 못생긴 자식이 없죠. 지난 3년간 다수 국민은 민주와 민생에서 못생긴 의붓자식 취급을 당해야 했습니다. 2012년을 기다리는 까닭이 이것이죠.
정 그동안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이 있었다면, 이제 복지화 30년으로 가야 합니다. 2012년이 대전환의 해, 새 시대를 열어가는 해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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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설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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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정동영,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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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동영은 617만표를 얻었다. 1960년대 같으면 대통령에 당선되고도 남을 득표였지만, 현실에서 그는 힘 한번 못 쓰고 530만표 차이로 대패했다.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큰 표차였고, 아마 앞으로 100년 이내에 깨지기 어려운 기록일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것은 당시 이명박 후보가 얻은 표는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얻은 표보다 겨우 4만9천표 늘었다는 점이다. 유권자 수는 근 300만명 증가했는데 말이다. 노무현을 찍고 다음 선거에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600만명에 달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의 민주시민들 전체로도 그렇고 정동영 개인으로도 그렇고 이 패배는 지우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남겼다.
정동영 의원과 ‘직설’을 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내내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직설을 마치고 그 말을 했더니, ‘성숙’이란 말이 조금 걸렸는지 “아이고, 내가 낼모레 육십이야”라고 손을 내젓는다. 그렇지만 2007년의 정동영과 엠비 정권 3년을 겪은 뒤의 정동영은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여당 대통령 후보 정동영에게 듣고 싶었던, 들어야 했던 얘기가 좀 구차하게 고향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된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살아가며 우리는 후회도 하고 회한도 갖는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왜 우리는 기어이 상처를 입은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란 말이 있다. 뒤늦은 반성을 꼬집는 말이지만, 소를 다시 키우려면 외양간을 고치지 않을 수 없다. 정동영의 복귀를 한사코 반대했던 세력은 민주당이 ‘도로 호남당’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동영은 억압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 호남은 지역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했다. 과거 민주당 정권 내에서 오른쪽 목소리를 대변했던 정동영이 지금은 먼지 뽀얀 노동 현장과 삶의 현장을 다니기에 바쁘다. 지난 지방선거와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 성과는 민주당에게 독이 될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누가 되든 야권 후보는 2007년의 정동영을 깨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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