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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의 사기그릇] 진시황의 전용도로 |
진시황은 생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토목건축 사업에 열을 올렸다. 유명한 만리장성과 아방궁을 비롯하여 각종 도로와 자기 무덤인 여산릉 등을 축조하는 데 100만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했다. 이런 과도한 토목건축 사업이 중국사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를 단 15년 만에 멸망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진시황의 토목사업 가운데 일반에 상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이 도로 공사다. 진시황이 닦은 도로는 크게 세 가지다.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직도(直道)를 비롯하여 군사 전용도로 및 황제 전용도로가 그것이었다. 황제 전용도로는 형태상 용도(甬道)라 불렀는데, 도로 양옆으로 담장을 세운 모습이다. 즉, 땅을 파서 지붕이 없는 터널 식으로 만든 도로를 상상하면 된다.
진시황은 왜 이런 형태의 전용도로를 만들었을까? 백성들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 해가 멀다 않고 천하 순시를 다녔던 진시황은 백성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소통 대신 봉쇄를 택하여 자신이 다니는 길조차 벽으로 막아 백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의 적극성을 자극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진시황의 선조들은 이런 이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신분을 따지지 않는 엄격하고 분명한 상벌로 백성들의 능동적 역할을 끌어냈다. 하지만 진시황은 백성을 무시했다. 그가 백성에 대한 공식 호칭으로 검수(黔首·검은 맨머리)라는 경멸조의 호칭을 선택한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그 결과 진나라의 ‘멸망은 서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찾아왔던’ 것이다. 지금 정권과 통치자가 ‘용도’에 갇혀 있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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