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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6 20:40 수정 : 2010.07.26 20:40

전제 왕조 체제나 독재정권 시절에는 글 때문에 곤욕을 치른 ‘필화’ 사건이 많았다. 이 경우 필화는 대부분 부당한 압박에 항거하는 정의로운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역사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설화’는 대부분 추잡한 말이 화근이다. 이런 추한 말들은 대부분 지식이나 학력과는 상관없는 천박한 인격에서 비롯된다.

“고전의 가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깨닫게 됩니다. 더군다나 동양의 고전은 우리의 삶 속에서 깊숙이 뿌리박혀 있어서인지 훨씬 깊은 맛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인논세’(知人論世), 즉 ‘사람을 알고 세상을 논한다’고 합니다. 간단한 결론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찰이 필요하다고도 합니다.”

윗글은 필자의 글이 아니다. 지금 요사스러운 혀로 인한 설화로 혼쭐이 나고 있는 강아무개 국회의원이 <사기>와 관련한 필자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의 일부분이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뽐내는 그의 글과 말이 어찌 그리도 다를 수 있는지.

‘언위심성’(言爲心聲)이라 했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말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말이니 얼마나 조심해야 하겠는가? 다 고전에서 나온 경구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고전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강 의원의 글과 그가 지금까지 내뱉은 추하디추한 말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일까? 그의 말을 보면 어느 쪽도 진실성은 없어 보인다. 그저 더러운 말만 남을 뿐이다. 말이 마음의 소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갑자기 말도 글도 무서워진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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