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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13 18:25 수정 : 2010.09.13 18:25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는 초등학생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고사성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우정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포지교’는 포숙의 양보와 관중의 배려를 축으로 하여 이들의 양보와 배려가 당시 제나라의 지도자였던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로 만들고 나아가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젊은 날 함께 장사를 했는데 매번 관중이 이익을 더 챙겼다. 주위 사람들이 관중의 욕심을 지적하자 포숙은 집에 늙으신 노모와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관중을 두둔했다.

제나라에 정변이 발생하자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공자를 모시며 경쟁 아닌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중은 포숙이 모시는 공자 소백(훗날 환공)을 암살하려고 했다. 소백은 자신을 죽이려 한 관중을 갈기갈기 찢어 포를 떠서 젓갈을 담그겠다며 이를 갈았다.

소백이 끝내 제나라 국군 자리에 올랐고, 관중이 모셨던 공자 규는 죽고 관중은 죄수를 싣는 수레에 실려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던 관중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포숙이었고,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찢어 죽이겠노라 호언장담했던 환공이 관중을 재상으로 기용한 것이다. 포숙이 환공을 설득하여 관중을 살린 것은 물론 자신에게 돌아올 재상 자리를 기꺼이 관중에게 양보한 것이다.

환공은 관중의 탁월한 식견과 개혁 의지에 힘입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를 전면적으로 개혁했고, 제나라는 수백년 동안 강대국으로서 행세할 수 있었다. 관중의 뛰어난 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포숙의 담대한 양보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김영수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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