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7 19:02
수정 : 2011.06.27 19:02
|
김정운 명지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일 잘하는 사람은 40시간만 일하고
일 중독자는 70시간을 일하지만
정작 일하는 건 30시간에 불과하다
내가 요즘 그렇다. 정말 바쁘다. 매일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하루에 강연 요청이 수십건이다. 방송 출연 요청도 넘친다. 써야 할 원고도 매일같이 밀려 있다. 그러다보니 ‘바쁘다’는 소리를 아예 입에 달고 산다. 누굴 만나도 “요즘 너무 바빠서…”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지치고 힘든 표정으로 “아주 바쁘다”며 불평하지만 사실은 ‘자랑’이다. ‘바쁘다’는 ‘나 요즘 잘나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특권도 주어진다. 모임의 시간이 바쁜 사람 위주로 짜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쁜 사람은 약속시간에 약간 늦거나, 예정보다 앞서 일찍 자리를 떠도 된다. 난 중요한 사람이니까. 중요한 사람 대접을 받는 기분은 아주 그럴듯하다. 아, 바로 이 기분이구나 싶다.
솔직히 난 좀 그래도 된다. 마흔 중반에 가깝도록 도무지 되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뭐 이토록 꼬이나 싶었다. 대낮부터 술 마시며 신세한탄이나 함께 하자는 ‘석좌강사’ 친구들 말고는 날 찾는 전화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한순간이다. 꼬일 대로 꼬인 고무줄이 반대로 한번 풀리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풀린다. 하늘로 날아가기까지 한다. 정신 못 차린다는 이야기다. 내가 요즘 그런 기분이다.
매우 바쁜, 따라서 아주 ‘중요한’(!) 내게 요즘 나타난 중요한 심리적 변화가 있다. 화를 자주 낸다. 아주 작은 일에도 벌컥 화를 낸다. 엊그제 밤에는 안 닫히는 거실 창문 때문에 혼자 버럭 화를 냈다. 열을 받을 대로 받아 하마터면 창문을 깨버릴 뻔했다. 화들짝 놀란 아내와 아이들이 자다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도둑이 든 줄 알았다고 했다. 황당한 표정의 가족들을 뒤로하고 돌아서며 난 좌절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욱하고는 바로 후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실 나와 같은 사람은 ‘A유형’이라 하여 정신병리학의 특별관리대상이다. 화를 자주 내는 것 이외에도 A유형의 사람들은 몇 가지 두드러진 심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성과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을 몹시 원한다.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다는 이야기다. 일이 맡겨지면 즉시 처리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못 참는다. 마감날이나 시간 제약에 예민하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횡설수설하거나 말이 느리면 못 참고 끼어들어 자신이 정리해준다. 운전할 때 내 앞에 끼어드는 차를 절대 용서 못한다. 심지어는 차선을 바꾸겠다는 옆 차로 차의 신호를 빨리 오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앞차 꽁무니에 바싹 붙어 절대 못 끼어들게 한다.
성공 처세서에 나오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심리적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화를 잘 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중독자는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40시간만 일하지만 일중독자는 70시간을 일한다. 그러나 그중 40시간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시간이고, 정작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불과하다. 걱정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이들에게 심장병이나 동맥경화 같은 스트레스성 성인병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내 여름 계획은 이렇다. 매일 로맨틱코미디를 한편씩 보는 거다. 아주 착하고 따뜻한 여인들과의 사랑을 꿈꾸며 저녁마다 웃고 울다 자는 거다.
큰놈에게 말랑말랑한 영화 리스트를 뽑아 달라 했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다. “아빠, 왜 그런 줄 알아? 늙어서 그래!”
아니다. 아들아, 늙어서가 아니다. 간 때문이다! 명지대 교수,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