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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29 19:20 수정 : 2011.08.29 19:20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주위에 삶이 우울한 인간을 두면
내 인생이 불행하고 시커멓게 될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만사가 꼬여 있는 사람은 얼굴 표정만 봐도 안다. 수천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도 내면이 복잡한 사람은 한눈에 보인다. 그 근처가 아주 시커멓다. 그런 인간을 전문용어로 ‘암적인 존재’라고 한다. 그 ‘암적인 존재’ 하나 때문에 전체 조직의 분위기가 회복할 수 없게 무너진다. 그래서 난 아침에 40~50대 ‘아저씨’와 만나는 일은 가급적 피한다. 하루종일 꼬일 확률이 아주 높다.

인간의 감정은 아주 쉽고 간단하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 결과가 그렇다. 삶이 즐겁고 행복한 친구가 반경 1.6㎞ 안에 있을 경우 내가 행복감을 느낄 확률은 25% 높아진다고 한다.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와 제임스 파울러가 1971년부터 2003년까지 21~70살 성인 512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은 표정, 몸짓, 말투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오래 산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생긴 게 닮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서표현 방식이 닮아가는 것이다.

긍정적 정서보다 부정적 정서가 더 빨리 전염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주위에 삶이 우울하고 꼬인 인간을 두면 내 인생이 불행하고 시커멓게 될 확률은 훨씬 더 높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남자들의 표정은 아주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최근 휴가기간에 확인한 현상이다. 휴가지에서 아이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아빠들을 자주 봤다. 마트에서도 각종 생활용품이 가득 찬 카트를 끌고 아내 뒤를 조용히 따라다니는 아빠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차~암 기특하다, 한국 사회가 진짜 많이 발전했다’며 흐뭇해하는 내게, 아내는 바로 정색을 한다. 아니라는 거다. 저런 표정으로 도와줘 봐야 집에 가면 욕밖에 안 돌아온다는 거다.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하루종일 따라다니는 남편을 견디는 일이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아느냐며, 나와 관련된 수년 전 일부터 차례로 꺼낸다. 한번 시작하면 매번 3시간이다.

하나도 안 즐겁기 때문이다. 의무와 책임으로, 어쩔 수 없어 하는 태도는 감각기관을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 인간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 표정, 몸짓, 말투다. 심리학자 메라비언은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시각이 55%, 청각이 38%의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정작 전달하고 싶은 말의 내용은 고작 7%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각·청각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내는 시간은 0.1초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미 말을 꺼내기 전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가 결정된다는 이야기다.

티브이 토론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자주 느낀다. 이야기의 내용은 옳은데, 그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우다. 비언어적 신호들이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물이다. 물이 제대로 흐르려면 수도관이 있어야 한다. 비언어적 신호들이 바로 이 수도관이다. ‘설득의 심리학’, ‘설득의 기술’을 아무리 읽어도 상대방이 설득되지 않는 이유는 이 수도관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덕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이 수도관이 망가져 있다.(내 칼럼 사진도 완전 꽝이다.)

기분 좋은 느낌, 상쾌함을 먼저 전달해야 내 이야기를 듣는다. 이건 억지로 꾸민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가 진정으로 즐겁지 않으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수록 ‘누어도 누어도 시원치 않은 전립선’만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줄줄 새기만 하는 내 마음의 전립선’에 대해 고민하자는 거다. 표정은 마음의 전립선이다.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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