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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석의 오늘 점심] 임금님처럼, 증편 한쪽 |
증편은 여름의 떡이다. 시식을 즐긴 우리 선조들은 떡도 절기에 따라 달리 해먹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떡이라고 하는 것은 철을 찾아 만드는 것이니, 정월이월은 송편을 만들고… 육칠월에는 증편과 깨인절미와 밀쌈을 만들고, 팔월에는 호박떡과 오려쌀송편을, 구월에는 두텁떡과 밤경단과 주악을, 시월부터 십이월까지는 밤경단과 콩경단, 쑥구리를 만드는 법이니라’고 했다. 지방에 따라 기주떡, 증병, 기지떡, 벙거지떡이라고도 불리는 증편은 멥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한 뒤 발효시킨 떡이어서 술떡이라고도 한다. 기주(起酒)라는 말 자체가 술을 부어 부풀렸다는 뜻인데, 더운 날씨에도 잘 쉬지 않아 여름철 건강을 생각하는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음식이다.
약간의 술내와 어우러지는 달보드레하고 새콤한 맛은 무더위로 잃은 식욕을 되찾게 해주는데다 소화까지 잘돼 여름의 별식으로 그저 그만이다. 그런 연유로 증편은 조선조에는 수라상에도 올랐던 족보 있는 복달임 음식이다. 증편에 관해서는 <음식디미방>, <주방문>, <규합총서> 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요리서가 다 언급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그 시절에는 널리 해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뿌리는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 들어온 상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호사설>은 상화를 발효떡을 가리키는 기수라 하였으므로 양자는 근친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화는 조선후기에 와서 발효시키지 않는 만두로 변하였으므로 이제 남은 발효떡은 증편밖에 없는 셈이다. 전래의 떡이 점점 잊혀져가는 요즈음 증편 한쪽을 먹으며 임금님의 여름나기를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서울 도곡동의 지화자에 가면 달곰새금한 증편을 맛볼 수 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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