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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석의 오늘 점심] 게장 |
게장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이 쓴 ‘촌주팔영’(村廚八詠)이라는 시에 게장을 노래한 대목이 나온다. “당년에 비틀비틀 옆걸음 치던 곽색으로 / 어찌 알았으랴 오정 사이에 젓 담글 줄을/ 한 딱지 두 집게다리가 모두 맛이 좋으니/ 의당 술에 넣고 또 밥 더 먹기 꼭 알맞네.” 이미 그때부터도 게장을 밥도둑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절한 조선의 20대 임금 경종의 사인이 게장을 잘못 먹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경종실록>에 관련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즈음에는 수라상에도 오르던 음식임을 간파할 수 있다. 게장에 대한 기록은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주방문>, <시의전서> 등 조선시대의 다양한 음식 관련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말에 나온 <산림경제>에는 술지게미로 게장을 담그는 조해법(糟蟹法), 술로 절이는 주해법(酒蟹法), 식초와 간장으로 담그는 장초해법(醬醋蟹法), 끓인 소금물로 절이는 침해법(沈蟹法) 등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을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세기 후반의 <청장관전서>에 “게딱지에 밥을 담아 먹지 말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식사예법에 어긋난다는 가르침이다. 요즘 사람들이 서로 게딱지를 차지하려고 식탁에서 눈치싸움하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은 상스럽다고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민물게로 게장을 많이 담갔으나 민물게가 귀해짐에 따라 요즈음은 서해에서 많이 나는 꽃게로 흔히 담근다. 꽃게장은 살이 많고 알이 꽉 찬 산란기 직전의 암게로 담가야 제맛이 난다. 이제부터 암게의 철이 시작된다. 서울 마포의 진미식당은 서산꽃게로 담근 게장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 한양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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