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5 20:35
수정 : 2011.04.05 20:35
묵사발은 이제 더 이상 묵사발이 아니다. 예전의 묵은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식품이었다. 조선 후기의 <옹희잡지>는 “흉년에 산속의 유민들이 도토리를 가루 내어 맑게 걸러내고 쑤어서 청포처럼 묵을 만드는데, 이것은 자색을 띠고 맛도 담담하지만 능히 배고픔을 달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묵사발까지도 ‘얻어맞거나 하여 얼굴 따위가 형편없이 깨지고 뭉개진 상태’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하대받아왔다.
그러나 요즘의 묵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을 정도로 신분이 바뀌었다. 시인 박목월은 “벌건 윤즙을 묵에 듬뿍 찍어 먹게 되면 입안이 얼얼하고도 구수하고 시면서 달다. 그 맛이 묵 맛”이라고 했다. 묵을 채 썰어 갖은 양념을 하고 육수를 부어 밥을 말아먹는 것이 묵밥이다. 묵을 소설가 성석제는 “도무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듯한 헐렁한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묵밥에 대해서는 “정말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맛이었다. 육수에서는 윤기가 돌아 허한 느낌을 줄여주었고 고추 덕분에 매콤했다. 묵은 이와 싸울 생각이 없는 듯 사락사락 입속에서 놀다가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갔다”고 예찬했다.
도토리묵밥은 떠름하고 쌉싸래하면서도 밍밍하고 담박한 것이 별스러운 맛을 낸다. <동의보감>은 도토리가 “설사와 이질을 낫게 하고 장위를 든든하게 하며 몸에 살을 오르게 하고 든든하게 한다”고 했다. 게다가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배출시키는 아콘산 성분과 지방 흡수를 억제하는 타닌까지 다량 함유되어 있어 몸에 이롭다고 한다. 도토리묵은 수분이 많아 포만감을 주면서도 칼로리는 낮아서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탄현동의 ‘옥’은 도토리묵밥으로 일대에서 이름을 얻고 있다.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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