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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1 20:01 수정 : 2010.07.22 15:29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블랙리스트 논란과 관련해 김미화씨가 <한국방송>(KBS)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그녀의 당당함에 경의를 표하는 응원글이 폭주하고, 한국방송의 새 노조도 이 싸움은 김미화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며 힘을 보탠다.

개인적 소감부터 말하자. 나는 방송인 김미화의 열렬한 팬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자연인 김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적지 않다. 언젠가 ‘공부’라는 화두로 김미화론을 쓰려고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을 정도다. 그녀의 초지일관한 태도와 사회적 학습을 통한 삶의 진화 과정이 경이로워서다. 그래서 폭주 응원글에 나의 지지를 보태는 일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김미화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방송에 블랙리스트가 있어서 나를 출연시킬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밝혀달라’고 적었다. 한국방송의 대응은 날렵한 검객의 칼솜씨보다도 빠르다. 곧바로 기자회견과 9시 뉴스 보도를 통해 반박하며 그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 과도한 대응이라는 지적에 한국방송 임원은 ‘자칫 잘못되면 엄청난 파장이 생기고 회사 신뢰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도 엄중한 대응을 분명히 했던 것’이라고 밝힌다. 군사독재 시절, 계엄사령관이 민주화세력에 대해 사회혼란을 유발하는 폭도로 간주해 엄중하게 진압하겠다고 발표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명백한 엄살이다. 한국방송은 국민의 소통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대한 소통 전문 집단이다. 외견상 소통에 관련된 각종 노하우와 채널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조직이다. 그런 집단에서 한 개인의 의사 표명에 대해 다짜고짜 법을 통해 진압하는 것은 기괴하다. 입으로는 자기네가 최고의 경호전문가라고 강조하면서 막상 자신들의 안전은 다른 경호회사에 맡기는 격이다.

많은 언론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이번 사태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논란이 계속 촉발될 수밖에 없는 최근의 여러 정황들이 더 의미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런 논란의 첫 번째 이유는 한국방송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전반에서 일상화된 듯한 ‘간주하기’ 태도에 있다. 투표에서 나를 지지하지 않고 기권하면 중립이 아니라 나의 적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논란 중에 김미화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제발 자신을 코미디언으로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이에게 정파적 딱지를 붙여놓고 그렇지 않다면 우리 편이라는 걸 입증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정치인 인터뷰 등의 방송 활동이 김미화 개인의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고 방송사의 의도였다는 방송사 사장의 확인서를 제시하면서까지 정파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은 눈물겹다. 한 개인의 존엄성마저 송두리째 짓밟히는 느낌이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드라마 속 역할과 실재 인물은 전혀 다르다는 방송사 임원의 보증서를 첨부해야 결혼 승낙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가.

내일이면 그녀가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이 2천회를 맞는다. 내가 보기에 김미화는 당대 최고의 눈높이 소통자다. 지난 7년 동안 그녀는 그 사실을 매일 몸으로 직접 증명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김미화의) 자질’이라는 한국방송의 저급한 자질 논란은 설득력이 없다.

새로 짜여진 청와대 조직은 첫 과제로 소통을 내세운다. 대통령실장은 매일 오후에 한 시간씩 관련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단다. 만일 한국방송이 스스로 나설 수 없는 처지라면, 나는 청와대 ‘소통의 시간’ 첫 번째 화두로 김미화에 대한 한국방송의 고소 취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미화 정도의 눈높이 소통자는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진심으로 소통의 정부를 원한다면 그리하여 정파적 관점이 아니라 소통의 본래 의미에만 주목할 수 있다면 당대의 소통자 김미화의 공정하고 눈높이적인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할 것이다. 맑은 아침 풍경 같은 소통의 사회를 꿈꾸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굿모닝, 김미화.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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