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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1 19:23 수정 : 2010.08.11 19:23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동시에 가장 폭력적일 수 있는 건 내가 ‘굳게 믿고 있는 바’다. 인간사는 나와 타인의 그런 믿음들이 결합하고 충돌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재오 의원이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해 과감하게 주장한 그 소신들은 나를 포함한 어떤 이들에겐 막말 발언으로 비쳐진다.

그의 항변대로 ‘덮어놓고’ 비난하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따져보고 깊이 생각해 봐도 그렇다. 그의 주장은 너무 간단명료해 서늘하다. 대학 졸업자들은 중소기업에서 1~2년 일하게 한 뒤 대기업 입사 자격을 주고 재수생들은 공장이나 농촌에서 일하게 한 뒤 그걸 바탕으로 대학을 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일 중심으로 생각하면 당연하게 도출되는 구상이란다. 동의하기 어렵다.

그의 주장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국가의 힘으로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 발상, 중소기업을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관문 정도로 취급하는 저급한 인식 등의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일자리 문제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고 있다며 불만과 답답함이 가득한 눈치다. 우연한 말실수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의 평소 소신을 밝힌 것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소위 왕의 남자가 한 말이라고 해서 침소봉대하고 앞뒤 자르고 한 부분만 골라 확대해석한다면 그건 의도적인 흠잡기일 것’이라는 옹호론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왕의 남자라는 속설이 아니라 실제로 국정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통령만큼이나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그의 정치적 위상을 감안하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힘을 가진 이들의 의도나 소신은 현실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구현될 가능성이 높다. 권력자가 머리 긴 연예인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혀를 차면 전국에서 야만적인 장발 단속이 시작되고 물길이 대한민국 경제의 동맥이 될 것이라는 권력자의 믿음이 신앙처럼 확고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반대편에 있는 목소리의 양과 질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4대강 사업 등은 진행된다. 그러니 이재오 의원의 소신이 어떤 형태로든 정책에 반영될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더구나 권력자들의 믿음은 로미오줄리엣효과처럼 반대가 많고 강할수록 내 믿음이 옳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관련 이슈에서 더 강경해지고 배타적이 된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른바 ‘계몽질’이라 할 만한 권력자들의 훈계와 가르침이 난무한다. 계몽은 나는 깨친 자, 너는 무지몽매한 자라는 기본 도식을 바탕으로 한다. 직업적 경험에 의하면, 그런 관계란 세상에 없다. 듣는 입장에 서면 금방 아는데 계몽자의 위치에 서면 잊게 되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 의원은 그런 면에서 찰떡궁합이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운하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대국민 설득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이재오 의원은 4박5일간 560㎞에 이르는 대운하 통과 물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사람들에게 대운하의 당위성을 몸으로 설파했다. 최근 이 대통령의 라디오 대국민 연설은 청년들에 대한 훈시가 너무 잦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눈높이를 낮춰라, 중소기업에 가서 회사를 키워라 등의 훈시성 발언이 많은데 이 내용이 그대로 이 의원의 이번 청년실업대책 발언으로 이어진 느낌이다. 학창시절 교장 선생님이 근엄한 표정으로 훈시하면 훈육 주임이 정신봉으로 마무리하는 장면과 닮았다.

힘이 생기면 자신이 행사하는 의사결정의 질도 좋아지는 줄 착각하는 권력자들이 많다. 당연히 듣는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를 고려하지 못하는 계몽질이 일상화되게 마련이다. 단언컨대, 그런 계몽질을 통해서 변화되는 사람은 없다. 이재오 의원의 진심과는 별개로 그의 발언에 사람들이 폭풍처럼 말화살을 날리는 건 그래서다. 사과하고 돌아봐야 마땅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트위터 @mind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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