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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1 17:22 수정 : 2006.06.02 16:43

박재동/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애니메이션. 전 한겨레 만평 화백


별빛 아래서

내가 재직하였던 중경고등학교 미술반 제자들은 지금도 가끔 모임을 갖고

나를 초대한다. 전번에는 졸업한 지 한 20년 쯤 되고 지금 은행원으로 있는

관규가 오랫만에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들을 만났을 때요. 그때 선생님이 조금만 말씀을

잘 해 주셨더라면…. 물론 그때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정확한 말씀이구요. 하지

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어때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다면 힘들었어도


행복했을 거예요….

관규는 기어이 끄으억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무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관규와 정반대 그러니까 관규가 바라던 대로 가던 학생이 있었다.

중신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제도에 있는 수자원 공사 전자부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시를 쓰자며 찾아 온 군대 동기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직업없는 중신이는 신문돌리기, 레스토랑 웨이터,

영화 엑스트라, 심지어 목욕탕 때밀이까지 하면서 시를 썼다. 그러나 시로

당장 무엇이 되는 게 아니어서 서대문에 ‘시칠리아의 암소’라는 조그만

카페를 열고 통기타로 노래를 하며 운영하였지만 5년을 버티다 지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복전함을 놓고 노래를 부르지만 생계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웨이터를 하기도 어렵단다.

그래도 중신이는 20년 전과 똑같이 늘 웃음을 잃지 않는 그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하고는 컴컴한 밤하늘을 어깨에 지고 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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