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평가에 연연하고 남을 의식하는 병이 있어요
|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남의 평가에 연연하고 남을 의식하는 병이 있어요
Q 저는 항상 남을 섬기고 베풀기를 좋아해서 주위에 친구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에게도 인정받고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고요. 어려서부터 그런 저의 삶이 행복했고, 그런 행동을 할 때 저 자신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늘 남에게 인정받아 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나도 답답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저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제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아오다 보니 늘 남의 평가에 연연하고 남을 의식하는 병(?)이 생겨버렸습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건지 나를 위해서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남에게 인정받아야만 만족하는 나의 삶. 남을 의식해 각본처럼 행동하는 나의 모습. 늘 인정받아야만 하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잠재된 나의 의식. 늘 체면치레하기 바쁜 나의 일상생활. 이런 저의 모습들을 뜯어고치려 해도 맘같이 되지가 않아요. 그때만 반짝 다짐하고 그렇게 행동하다가도 언제부턴가 또다시 남을 의식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이지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습니다. 이런 저의 삶,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고민 상담 메일을 받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 이것은 혹시 인간으로 위장한, 예수님이 보낸 메일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예수님 또한 이런 식의 고민과 고뇌로 오랫동안 기도하지 않았을까, 트위터를 하셨다면 이런 식의 트위트질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 하찮고, 무례하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자가 어찌 해답을 준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인데 말이다. 설령 맞팔을 맺었다 해도 가만히 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날리는 트위트만 주억거리며 받아 적을 수밖에.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않는다. 왜? 예수의 욕망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고유한 욕망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밑줄 쫙 그을 단어는 바로 ‘고유한’이라는 형용사다. 이게 바로 오늘의 핵심어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얘기가 나왔으니 계속 그쪽으로 풀어나가 보자면, 기독교인들의 욕망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그 삶을 그대로 모방하고 살기만 해도 훌륭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게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니까). 그래서 그 욕망은 감출 필요도 없고, 만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얘기를 왜 길게 하는가 하면, 우리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스스로 욕망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속물들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모방적인 존재들이어서, 욕망 또한 모방하고, 그래서 꼭 롤모델(전문용어로는 아마 중개자쯤 될 것이다)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불교 신자들에겐 석가모니가, 작가 지망생들에겐 카프카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데, 문제는 그런 롤모델이 가까운 곳에 있을 땐 꼭 사달이 나고 만다는 사실이다. 여기, 교회 장로가 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다. 그의 롤모델은 지금 현직에 있는 장로들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한 것처럼 몇 년 동안 주일 교회 주차관리요원으로 봉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숨긴다. 나는 그저 예수처럼 낮은 곳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며 뻥을 친다. 그러면서 또 한편, 자기와 같이 장로가 되려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느라, 그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늘 한 뼘쯤 더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왔는지, 장로가 되려고 왔는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도 뭐, 이왕 시작한 일,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삑삑, 호루라기만 불어대면서.
의뢰인의 글이 조금 추상적이어서 섣불리 말을 해주기가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든 사안의 근원에는 바로 이 롤모델과의 관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뢰인이 어린 시절 남을 섬기고 베풀면서도 행복했던 이유는, 당신의 롤모델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당신과 거리가 먼 곳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당신과 같은 욕망을 품고 있는 경쟁자들이 주위에 하나둘 늘어나면서 지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경쟁자들 때문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욕망하는 것을 당신도 똑같이 욕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못해서, 그것을 감추느라 애쓰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왜?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면 속물이 되고 마니까. 그저 남들을 모방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니까. 그것을 안간힘을 쓰면서 감추다 보니,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힘들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