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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30 22:11 수정 : 2010.07.04 15:24

‘남자 경험’이 많은 듯한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워요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남자 경험’이 많은 듯한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워요

Q 그녀에 대해선 잘 몰랐지만, 첫인상과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3년이란 시간 동안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락, 이제는 서로 연인이라는 말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그려왔던 그녀를 직접 만나니, 연애에 늘 수동적이었던 제가 능동적으로 다가가게 되었고, 지금도 잘하고자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하지만 순수하게만 느껴졌던 그녀가 남녀관계(잠자리)가 일찍부터 시작되었고, 의외로 즐기는 타입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상당한 실망감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잠자리에서 그녀의 행동은, 뭐랄까요, 능숙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예전 남친들과 경험이 많은 듯합니다.) 참고로 저는 경험이 너무 적은 편이고, 또한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어요. 잠자리에선 내가 그녀 손바닥 위에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와 사귀다 보니, 나쁜 남자들이 쉽게 흔들 수 있는, 애정결핍증 같은 게 보였습니다. 옆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흔들리는 타입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예전 남자들이 그렇게 인성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연애를 5번 정도 하다가, 자신의 연애방식에 후회가 되어 2년 가까이 남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저를 만나게 되었구요. 뭐 이렇게 3년을 넘게 혼자 그리던 그녀를 실제로 사귀게 되니 좋은 부분과 동시에 실망감도 함께 다가오더라구요. 과연 이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해야 이런 이상한 생각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을까요?

A 내가 웬만해선 신문지상에 글 쓸 땐, 반말을 잘 안 하거든. 예의가 거의 다보탑처럼 바른 인간이어서 그런 게 아니고, 원고 분량 때문에 따박따박 존칭어를 쓰곤 했거든. 한데,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좀 생략해보도록 할게. 그러니까 그냥 상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혼난다고 여기면서 들어봐. 그만큼 나도 더 힘이 드는 일이니까, 너무 서운하게만 받아들이진 말고.

자, 잘 들어봐.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마음고생들은 사실 혼자 끙끙거렸던 3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 차원 같은 것인지도 몰라. 실질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건 불과 얼마 안 되었을지 몰라도, 너한테는,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미 3년 전부터 연애를 시작한 것이거든. 한데, 그녀는 그동안에도 다른 남자들을 계속 만났어. 그러니 열 받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신경 쓰이는 거지. 그걸 네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지옥이 열린 거야. 이게 뭐냐,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첫날밤에 ‘자기 혹시 나 이외에도 경험 있었어? 다 이해줄 테니 털어놔봐’ 운운하는 짓거리들과 바른 직선으로 연결되는 심리라는 거야. 대한민국 남자들이 왜 자꾸 여자들에게 이따위 눈에 다 보이는, 이미 오프사이드 깃발 번쩍 들린 질문들을 남발하냐면, 이게 좀 쪽팔린데,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난 이 여자한테 일등 먹고 싶은 거야. 정말 궁금해서 그런 게 아니고, 일등이고 싶어서,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또한 지배하고 싶어서 그런 거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여자를 히말라야 등성이쯤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야(제발 등정하듯 연애 좀 하지 말자. 너희들이 무슨 엄홍길이냐, 베이스캠프까지 차려두고 연애를 하게).

사실, 네가 지금 제일 괴로운 건, 그녀가 잠자리에서 능숙하다는 거, 그녀가 이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이 네가 보기엔 다 나쁜 놈들인 것 같다는 거, 그거 아니겠냐? 그 말에 포함된 공식이라는 게 무엇이겠느냐? 나는 나쁜 놈들보다 더 못한 놈, 나쁜 놈들도 쉽게 사귀는 여자를 3년 동안 끙끙 앓다가 사귄 한심한 놈. 이런 자의식이 너한테 깔려 있다는 거, 아니겠냐? 그러니까 너는 지금 네 연인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고, 바로 그 나쁜 놈들 때문에, 그 나쁜 놈들보다 못한 ‘나’라는 자의식 때문에 힘든 거야. 그게 핵심이지.

자,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 이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야. 그 답도 이미 네 질문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 마지막에 네가 한 말, 그러니까 ‘그녀는 어떤 여자일까요?’ 운운하는 질문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질문들이야. 뭘 자꾸 해석하고, 해답을 내려 드나, 이 친구야. 무슨 여자가 바코드 찍힌 일품호박죽도 아니고, 어떻게 단일한 내력을 뽑아낼 수 있겠냐, 이 말이다(내가 보기엔 사랑밖에 난 모르는, 훌륭한 처자다, 이 친구야. 애정결핍증은 어쩌면 자네의 증상인 듯하고). 여자란 말이다, 지금도 내가 늘 와이프에게서 경험하고 있지만, 이건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상대에 따라 늘 결이 바뀌는, 남자들보단 언제나 반 걸음 정도 앞서 있는, 해석불가능한 족속들이어서, 어느 땐 남자가 지퍼를 내리기도 전에, 이미 열락에 도달할 수도 있는 존재들이다, 이 말이다. 너는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첫 경험에서도 능숙하게 상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게 바로 여자란 뜻이다.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그러니, 이 친구야, 3년 동안 애타게 끙끙거리던 마음부터 내려놓거라. 그게 자꾸 남아 있으니, 단번에 무언가 해결하고 싶고, 실망감도 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실망한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기대 때문이니, 그저 미리 예측하지 말고, 그때그때 받아들이거라. 연애에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다 아는 것보다 여백을 놓아두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또한 명심하고. 너 자신의 여백을 만드는 일부터 먼저 하길.

이기호 소설가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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