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7.14 20:16
수정 : 2010.07.18 14:32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병적인 종교생활로 가정이 파탄나게 된 언니 가족 어찌해야 될까요?
Q 저에게는 다섯 살, 네 살 귀여운 딸들이 있는, 결혼한 언니가 있습니다. 며칠 전 형부가 저희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더는 언니랑 못 살겠다고 했답니다. 이유는, 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니가 계속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래요. 무언가 좀 이상한 마음이 들어서, 인터넷에 들어가 언니가 다니는 교회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그 교회가 이단이라고 그러더군요. 88년인가에는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우기도 했다고요. 사실 언니는 과거에도 종교 문제로 가족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어요(그땐 무슨 진리회를 믿었어요). 그때도 일년 남짓 소식이 끊겨 부모님 속을 태웠죠. 그래서 그때 이야길 하며 언니를 나무라면 ‘그땐 내가 어려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더이상 다른 선택은 없다’며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진리라고 말합니다. 언니의 종교생활로 인해 가족이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조카들이 상처 받을까 걱정되니 조금 자제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면, 교회에 안 가면 자기가 미칠 것 같아서 안 되겠답니다. 그저 언니는 우리 가족이 하나님만 믿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저의 능력으론 언니를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과거 언니가 행방불명됐을 때 가족으로서 챙겨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 가슴이 아픕니다. 어찌해야 될까요?
A 내가 웬만해선 종교 문제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절박하니 우선 이 질문부터 얘기하고 넘어가자. 자, 잘 들어봐라. 고3 중반 때였던가, 같은 반 친구의 소개로, 야밤에, 먼 산길을 걸어, 웬 종교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교회 부흥회인 줄 알고 갔더니, 거기가 말로만 듣던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소경을 눈 뜨게 한다는, ‘유명짜한’ 목사님(안타까워라, 이분은 몇 년 후, 사기죄로 구속되셨다)의 심령 대부흥회 현장이었다는 것. 뭐, 그래봤자 별거 있겠어, 하면서 자리에 앉았는데, 불과 몇 분 만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야말로 ‘깜놀랄’ 만한 기적들이 연이어 펼쳐졌던 것이다.
목사님이 신도 몇 명을 연단에 쭉 세워놓고 ‘성령의 이름으로 말할지어니, 다리에서 뱀을 볼지어다!’라고 소리치면, 정말로 사람들이 뱀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하반신 불구인 환자를 눕혀 놓고 계속 두 다리를 꾹꾹, 양손으로 누르며 안수기도를 하면, 놀라워라, 언제 그랬냐는 듯, 환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권이었던 것은, 그날 밤,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불러 세워놓고, 그대로 뒤로 자빠뜨렸다는 것이다(은유적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그랬다). 완력이나 힘을 써서 그런 것은 아니고, 신자들이 목사님의 몸에 슬쩍 손만 갖다 대면, 그대로,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가고 만다는 것, 그것 역시 성령이 목사님에게 임했다는 증거라는 것. 그렇다면 나는? 나 역시 물론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갑자기 현기증이 온 것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후에, 몇 년이 지난 후에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는 ‘자빠짐’(남들도 다 자빠지니까, 자빠지지 않으면 바로 사탄이 되고 마니까)이었지만, 아아, 당시에는 목사님의 위대함만 눈에 보였을 뿐, 다른 건 전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다행인지 몰라도, 부모님의 압박과 억압 덕분에 두 번 다시 그 목사님을 찾아가진 못했다).
문제는 나를 집회에 이끈 같은 반 친구였다. 중학교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친구는, 그 이후로도 쭉 그 목사님을 따라다녔는데, 그러기 이전에 줄곧 나에게 했던 말은 주로 ‘도대체 왜? 왜 하필 나에게?’였다.
그러니까 이 세계 자체가 불가해했다는 것. 자, 그러니까 여기서부터가 오늘의 핵심이다. 우리가 주로 말하는 이단이라는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세계에 대해서 ‘왜 하필 나에게?’라는 질문을 갖는, 세계에 대해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그런 질문을 마음에 품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이 세계 내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공포와 불안이 큰 사람들은 이 세계 대신, 다른 세계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점프해서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인과관계를, 그들 스스로 설립하고, 그것을 신봉한다는 것이다(그러니, 사실 일종의 편집증과 유사하다). 왜? 그러면 모든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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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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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니 의뢰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단이라는 종교보다, 언니의 불안과 공포가 무엇인지, 그것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시급하다. 형부는 이혼을 하겠다고 하지만(사실, 의뢰인에겐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 것 아닌가? 그러나 핵심은 이혼이 아니지 않은가? 이혼을 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그런 형부의 태도(사실, 이 태도에도 조금 문제가 있다)가 언니에게 공포와 불안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예전 언니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 가족들이 그 문제를 너무 쉽게 해결하고, 봉합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상담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태를 너무 손쉽게 해결하려는 의지가 아니던가? 지금 의뢰인에게 필요한 것은, 언니의 이야기를, 그 이야기 뒤에 숨겨진 공포와 불안을 안간힘을 써서 찾아내는 일이다. 그것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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