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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7.28 22:00 수정 : 2010.08.01 14:29

연애에 대한 정의부터 바꾸세요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연애에 대한 정의부터 바꾸세요

Q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제가 연애에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저는 24년 살아오면서 중학교 2학년 때 얼떨결에 6개월간 만나본 여자친구를 제외하곤 연애를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남자입니다. 제게 여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거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동안 정말 수많은 소개팅과 몇번의 짝사랑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사랑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저는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흉측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키는 크진 않지만 보통이고, 성격은 그냥 많이 털털하고 솔직하고 다소 직설적이기도 합니다. 소개팅을 나가면 웬만큼 말도 잘 통합니다. 저는 예의와 기본적인 것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은 하지 않죠. 소개팅을 하고 나면 주선자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듣습니다. 문제는 후에 만남이 이어지면서 여자들이 대체로 저한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정말 좋은데 남자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고요. 처음엔 때가 되면 생기겠거니 했는데 이제 이 문제가 제 삶을 지배해버립니다. 주변에 망나니 같고, 정말 아니다 싶은 놈들은 여자 갈아치우면서 잘만 사귀고 헤어지는데, 정작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저는 왜 계속 제자리걸음일까요? 사랑할 나이에 사랑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요즘 너무 힘듭니다. 정말 여자 손을 잡는 게 어떤 느낌일지, 진정한 내 지원자,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A 아아, 가슴이 아프다. 여자 손을 잡는 게 과연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니, 두손 가득 로션이라도 잔뜩 바르고 살포시 내밀고 싶은 심정이다. 의외로 주위에 이런 총각들이 허다하다. 지하철 안에서 기도하듯 자기 두손을 꼬옥 깍지 끼고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이다. 그래 봤자 뭐하나. 손바닥 가득 땀만 고일 뿐이다. 간절함이 더할수록 땀은 더 배어나고, 여자들은 그런 손을 잡길 꺼려하니, 상황은 계속 악순환되는 것이다. 그러니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왜 땀이 나는지, 정말 땀은 났는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싯적에 소개팅을 몇번 나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주선자는 “마음엔 드는데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대” 혹은 “괜찮은 거 같대, 기다리면 연락 갈 거야” 등등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 또한 의뢰인의 경우처럼 연락을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후에 내가 주선자의 지위에 섰을 때, 비로소 그 말들이 완곡한 거부 표현이라는 것을, 한번 마사지된 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상은 “뭐 그리 꽉 막힌 사람을 소개해주고 그러냐?” 혹은 “한번만 더 전화하면 번호 바꿔버린다고 전해”였다는 것. 주선자라는 위치는 원래 그런 것. 그러니 그 말을 신뢰하고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계속 오판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는데, 사람들은 욕만 할까? 이런 입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고, 그만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확신을 가진 자는, 자기가 없는 곳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바로 옆에서 해주는 말들만 믿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틈새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니 연애는 계속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 왜? 연애는 실상 상대가 존재하지 않을 때 더 많이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연인과 만나서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그 시간들보다도, 연인과 떨어져 있는 그 시간에 비로소 연애는 시작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의뢰인 주변의 망나니 같은 친구들은, 의뢰인 눈에만 망나니였을 뿐, 실은 누구보다 섬세하고 따뜻하고 연약한 존재였을 수도 있었다는 것. 이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비로소 연애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눈앞에서 하는 말이 아닌,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상상하게 해줄 수 있는 힘(그것이 바로 여자들이 자꾸 ‘나쁜 남자’들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다. ‘나쁜 남자’란 무엇인가? 말이나 행동 너머에, 다른 숨겨진 진정성이 존재할 것만 같은 자들이 아니던가?), 당장 눈에 띄는 토목이나 건설 같은 거 말고.

덧붙이자면, 연애에서 자꾸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을 꿈꾸지 마라. 그것을 꿈꾸니까 섬섬옥수 같은 여자의 손길을 바라고, 진정한 자기의 지원자를 염원하는 것이다. 연애는 연애일 뿐. 때론 추잡하고, 치졸하고, 박 터지고, 땀이 흥건히 흐르는 게 연애다. 의뢰인은 예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연애라는 것은 원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일 뿐이다(연애에서 상식을 내세우면, 상대는 당연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호주의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것들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연애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가 마음에 들면, 이 사람아, 주선자에게 전화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집 앞으로 먼저 찾아가고, 반나절 넘게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질질 울면서 매달리기라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뭔가? 의뢰인에겐 아직 사랑 같은 사랑이 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의 연애에 대한 정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 이건 뭐 쓰다 보니, 자꾸 다른 사람이 생각나서 울화통이 치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 양반도 사랑에 대해선, 연애에 대해선 젬병인 것을.

이기호 소설가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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