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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1 19:12 수정 : 2010.08.15 12:16

남편이 전업주부되기 전까진 ‘네버!’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Q 가사와 육아에 비협조적인 남편이 자꾸 둘째를 낳자고 합니다

38세의 직장여성입니다. 결혼 9년차이고, 5살 딸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남편은 가사노동에 협조를 해주지 않고, 월급통장도 따로따로 관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요. 솔직히 그런 남편의 태도 때문에 지쳐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금 남편이 둘째를 갖길 원한다는 거지요. 저는 딸아이가 태어나면서 남편이 조금이라도 바뀔 줄 알았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가사와 육아는 제 몫이고, 지금까지 친정 부모님과 동생들의 도움으로 딸을 키울 수 있었지요. 그런데 둘째를 갖겠다는 건, 저에게 직장을 그만두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딸을 생각하면 둘째를 낳는 게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육아와 가사에 무심한 남편에 대한 분노가 더 확장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남편을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잘하겠다는 말뿐, 지금도 가사와 육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고 건성입니다. 일관성도 없고, 가사, 육아를 대하는 태도 역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가 하나든 둘이든, 가족 간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둘째가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준으로 저를 설득하니 항상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한 건 왜 남편이 둘째를 원하는지 제가 정말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아들을 원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절대 아니랍니다.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남편은 왜 둘째를 원하는 걸까요?

A 자, 먼저 일화 하나 나간다. 물론 내가 겪은 일이다. 첫아이를 낳기 전 산부인과에 아내와 함께 가서 만면 가득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채 상담을 받다가, 불쑥, 그야말로 불쑥, ‘가족분만’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의사의 말인즉슨 분만실에 남편도 함께 들어가 아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출산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것. 하하하, 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계속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울고 갈 미소를 지으며, 단 일 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오케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정작 첫아이가 태어나던 그날, 분만실에 아내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들어갔던 나는… 아내보다 더 큰 비명을 질러대다가 그만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아내는 후에 덕분에 심리적 안정은 가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두려움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는 말씀). 아앗, 그것은 내가 평상시 티브이나 영화로만 봐왔던 고통과는 질적으로 다른, 끈질기고 끈질기고 끈질긴 그 무엇이었다. 시간이 지난 뒤, 담당의사에게 넌지시 ‘거, 가족분만이라는 게 별 효과가 없는 거 같아요. 아내도 별로라고 그러고….’ 그러자 돌아온 답은 이런 것이었다. ‘그건 산모도 산모지만, 아빠를 위한 프로그램이거든요. 이건 뭐 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깐요.’ 나는 그 말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봐도 잘 모른다는 건 맞는 말이 분명했으니까.

두번째 일화. 첫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부터 이런저런 주위의 훈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칼에 둘째까지 갖는 게 좋다, 시간 지나면 더 어렵다, 하나 키우는 게 어렵지 둘은 똑같다, 아이가 혼자면 얼마나 외롭겠니, 그러다가 문학 한다고 그러면 어쩌려고 그러냐 등등. 말들이 참 많았다. 그중 아빠인 나에게 가장 유혹이 되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너, 둘째가 있어야 부모가 편해진다. 그래야 둘이 같이 놀거든.’ 초등학교 1학년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의 말이었는데, 친구는 얼마 전부터 새로 모으기 시작한 피카츄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그럴까? 아내와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쉬이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우발적 사고로 인해 둘째를 갖고 낳은 뒤, 처음 든 깨달음 하나. ‘속았다!’(하나는 하나대로 어렵고, 둘은 둘이어서 어렵다) 그리고 두번째 든 깨달음은 ‘집집마다, 아이마다 다르다!’라는 것.

자, 그러니, 오늘의 상담자에게도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 거 같다. 절대로, 지금과 같은 상태에선 ‘둘째’ 생각은 하지 마시길. 남편의 의사, 남편의 생각이 문제가 아니고, 본인의 의지가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 이후 더 큰 문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이 세상 모든 남편들에게 자식이란, 정서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다. 어미가 감당하는 물리적인 고통과, 물리적인 어려움에 대해선 그저 감으로만, 대충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남편의 생각? 어쩌면 남편은 아무 생각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평균적인 삶, 혹은 누군가 말해준 일반적 가정의 모습을 모범답안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남편의 생각에 상담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솔직히 이런 문제는 상담할 거리도 안 된다. 한데, 상담자는 둘째를 가지면 남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할까, 걱정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무엇인가? 지금까지 상담자는 남편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면서 살아왔다는 것, 육아와 가사에 무관심한 남편을 그저 속으로 삭이며 방치해왔다는 것, 어쩌면 스스로 종속되어왔다는 것(그건 또 얼마나 편한 일인가). 그 상태에서 아이들을 키우면 철저하게 부모에게 종속적인 아이들로밖에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우려스러운 점이다. 하나든, 둘이든. 그러니, 상담자여. 남편에게 말하시라. 둘째를 갖고 싶으면 네가 먼저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남편의 길로 접어들거라, 그러면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해볼 수 있을 거라고. 아, 그리고 우선 조심해야 할 것 하나. 언제나, 자나깨나, 사고 조심하시고.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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