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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바보온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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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Q 같은 회사에 다니는 무능한 남편, 노력도 하지 않는 게 한심스러워요 저와 남편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남편의 일이나 소속은 승진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회적 지위를 생각한다면 빨리 공부를 해서 소속을 바꾸어야 하는데, 남편은 전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네요. 같은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저는 그의 앞날이 너무도 환히 보입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열등감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그의 태도입니다. 방법이 있는데도 말이죠. 노력도 하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고 불만을 품는 게 너무 안타깝고 때론 한심스러워 보여요. 솔직히 저는 그보다 나은 직급에 있습니다. 나중에는 저마저도 그를 무시하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제 생각을 말해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고, 화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네요. 이젠 슬슬 지쳐 포기하고 싶은데, 제가 그것을 포기한다면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을 것 같습니다. 신랑은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게 안 되는 제가 잘못된 건지. 저는 미래가 걱정돼서 그렇거든요. 방법 좀 알려주세요. A 이래서 부부는 같은 직종, 같은 직장을 다니면 안 된다는 말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이건 뭐 여백이라는 것이 없으니까, 숨길 수 있는 것도 하나 없이 모조리 드러나 버리니까, 부부 생활도 액면 그대로 사회생활의 연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나쁜가? 공통의 관심사도 공유할 수 있고, 가정 경제 운용도 투명하고 계획적이니, 에헤라, 금세 부장도 되고 상무도 되고 부부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일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순진하고 아름다운 한 떨기 민들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사실, 현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직급에 따라, 급여에 따라 가정에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 같은 것이 세워지게 되고, 경제 운용도 결재를 받듯 대차대조표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종내에는 이게 가정인가 회사인가 알 수 없게 되고, 자식 또한 신입사원 교육하듯 복사부터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혼란스러운 상황이 야기될 가능성이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자고로 그런 부부들은 가정에서만큼은 회사 얘기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전해 내려왔지만(안 그러면 만날 쌈박질만 하게 되니까. 계급장 떼고 싸운다는 것),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프로그램 창 내렸다 지웠다 하듯 깔끔하게, 앙금 없이 정리될 수 있는 법이던가? 오늘의 문제는 바로 그런 가정의 회사화, 혹은 가정의 태스크포스(TF)화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핵심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 전, 이름도 생소한 장관에 내정된 정치인께서 재수생이나 취업준비생은 그냥 놀게 하지 말고 공장이나 농촌으로 보내 그 성적으로 대학이나 기업에 들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수학 정석과 토플 때문에 고혈압을 앓고 있던 전국 수만 청년들의 혈관을 정석으로 ‘쌔리’ 때린 일이 있었다. 그 발언을 가만가만 곱씹어 보면 그 양반의 평상시 사람에 대한 잣대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가 있어서, 마음이 참으로 ‘거시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양반의 생각대로라면, 전국의 모든 재수생이나 취업준비생은 교화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 하나하나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국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간단하게 말해서 타인이란 ‘내가 보기 좋은 또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그 양반의 대부 격인 분도 말버릇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연발하신다). 오늘 질문하신 분도 어쩌면 그와 흡사한 태도가 아닐까, 사뭇 염려스럽다. 물론 이해할 구석도 없지 않다. 배우자를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싶고, 배우자의 그릇된 점을 비판한다는 것은 애정의 이름으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점이고, 권장할 만한 부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우리는 잊어선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상대방은 결코 ‘바보 온달’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혹은 동반자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비독립적인’ 대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남편이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갖고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지만, 그건 아내이자 직장 내 더 좋은 직급을 가진 자의 시각일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남편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 점 또한 생각해주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 좋은’ 쪽으로 상대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좀더 쉬운 사랑법인지도 모른다. 정말 어려운 것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일정 정도의 희생과 포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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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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