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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30 09:44 수정 : 2010.09.30 09:44

‘부자지간=동일 입장’은 독단 아닐까?. 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천안함사태 원인을 놓고 아버지와 심하게 다퉜어요

Q 저는 올해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24살 청년입니다. 집은 강원도인데 현재는 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고요, 전공은 경영학입니다. 제가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된 이유는 얼마 전 추석 연휴 때 겪은 일 때문입니다. 금요일부터 휴강이 된지라 미리 부모님이 계신 강원도를 찾았는데, 거기에서 그만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말았습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바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 저는 정부의 발표에 미심쩍은 부분이 많고 그래서 북한의 소행이라곤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팽팽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는 서로 감정싸움의 양상으로 변해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고등학교 지리교사로 재직한 분이고, 집에서도 쉽게 책을 놓지 않는 분입니다. 졸업한 제자들도 잊지 않고 많이 찾아오는 편이고요. 저도 그런 아버지를 평상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정치적 문제로 대립할 땐 아주 다른 분이 되고 맙니다. 이번엔 저에게 ‘네가 누리고 있는 모든 혜택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데’라고 소리치기도 하셨습니다. 추석 아침까지 말없이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차례만 지내고 바로 자취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매번 이런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대립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그것 말곤 다른 문제는 거의 없거든요. 차라리 그런 문제에 대해선 침묵하는 게 좋을까요? 그러기엔 제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니…. 의견 부탁드립니다.

A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이란, 아아, 나도 누군가에게 그 해결책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 그 말인즉슨 무엇이더냐. 나도 똑같이 한가위 둥근 달을 조명 삼아 아버지와 100분 토론을 하고 왔다는 말씀. 간만에 후손들이 차려주는 송편을 안주 삼아 정종 한잔 드시러 내려온 조상님들은 졸지에 시민논객이 되어 꾸벅꾸벅 밤늦도록 돌아가지 못하시고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조상님들께 마이크를 넘길 수도 없는 상황이니, 패널들 목소리만 점점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 상황이 20대 초반부터 시작돼, 이제 불혹을 목전에 둔 지금 이 시기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 년 내내 한가위만 같으면 한 집안이 ‘진중권-전여옥화’되는 것은 시간문제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어쩌나? 나도 오늘 질문한 청년처럼 차라리 침묵하는 게 좋겠구나, 명절엔 절대 아버지와 함께 뉴스 따위는 보지 말고 은밀히, 실수를 가장해, 똥 쌍피를 바닥에 내려놓는 효도 고스톱이나 치고 와야겠구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대놓고 질문을 받고 보니 마냥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반성이라고 말하긴 뭐하고, 그렇다고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도 쑥스러운 말들을 이제부터 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타인과 목소리를 높여 싸운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정치적인 문제로 서로 이견이 생겼다고 해도, 적당한 선에서, 서로 목에 핏대가 드러나기 전에 멈추거나 말을 돌렸다. 항상 선을 넘는 경우는 그 대상이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거나 아내이거나 사촌형인 경우였다. 이건 어쩐지 좀 비겁하다는 인상이 들면서도 매번 그만큼 그 사람들이 내겐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알리바이를 대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역시나 스스로를 기만한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실상은 오늘 질문한 청년이 말한 ‘자존심’, 그것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부모와 정치적인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윤리감각이 엉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와 나는 일심동체, 한 줄로 쭉 나열해서 서야 한다는 무의식이(아니, 어쩌면 연좌제의 트라우마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말씀. 그래서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교화시키려 애를 쓰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논리와 논증이 끼어들 자리가 있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독립적인 자아로 보지 못하는 마당인데.

한데, 한데 말이다, 자존심 문제까지만 치닫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런 관계가 더 건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가 장관이기 때문에 특채로 정부 부처에 들어간 딸은 과연 어떤 정치적인 문제로 아버지와 대립해 보았을까? 내가 보기엔 이런 경운 아버지도 문제이지만, 서른 살도 훨씬 넘은 딸이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 반대의 경우로, 나는 아버지가 재야단체인 평군(평화재향군인회)의 주축 멤버이고, 그 아들이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는 가계를 알고 있다. 마흔도 훨씬 넘은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색깔이 다른 정치집단에 속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몇몇 보수언론에선 이를 꽤나 못마땅해하는 눈치다. 왜? 아버지가 좌익이면, 그 아들도 좌익이라는 공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연좌제의 공식.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자, 정리하자. 어쩌면 오늘 질문한 청년과 아버지는 서로 건강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교화’에까지 가고자 하는 의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존심’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서로 독립된 정치성향을 지닌 존재라는 윤리감각을, 어렵지만 인정하고, 그다음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는 연좌제의 트라우마에서, 아들은 교조주의적 독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송편을 자시러 먼 길 달려온 조상님들은 그 모든 일이 또 얼마나 하찮아 보이시겠는가? 예의상 쌍피 내려놓지 말고, 최선을 다해 화투를 치는 것, 그것이 부자간의 진정한 윤리감각이다.

이기호 소설가 / 고민상담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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