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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14 14:06 수정 : 2010.10.17 11:46

정보 원하는 사람에겐 그냥 정보 줘보세요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Q 주변 사람들이 제 성형수술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통에 피곤해 죽겠어요

저는 2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부모님이 성형수술 이야기를 꺼냈고, 몇 달을 고민하다가 성형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수술 경과는 걱정과는 달리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제게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겼고 그 사람들 중에서는 저에게 성형을 했느냐고 묻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제 고민은 이것입니다. 성형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꺼려지지 않지만, 사람들은 생각 외로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어느 부위, 어디 병원, 비용 등을 계속해서 캐묻는 것은 물론 가까이에서 얼굴을 뜯어보며 만져보곤 합니다. 성형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과정으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는지 소상히 얘기하면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성형을 묻는 질문엔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얼마 전 어떤 여자분은 제 코를 잡아당겨서 만져보더니,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면박을 주더라고요. 저는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모에 자신감을 얻은 대신 이런 고민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대가이니 그저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도 이런 불편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A 처음엔 이게 모두 단순한 외모 문제인 줄 알았다. 뭐, 그런 거 있지 않는가? 외모지상주의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우리들의 현주소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국에서 뛰고 있는 두명의 축구선수를 떠올리기도 했다. 흠, 그렇지. 이건 루니와 베르바토프를 예로 들어서 말해주면 되겠군. 탈모에 대응하는 두명의 선수. 한쪽은 드러내놓고 신경쓰지 않고, 다른 한쪽은 애써 감추려 노력하는 자세들. 그것이 각 선수의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들…. 그러면서 말미에 타인들 눈치 보느라 쓸데없이 에너지 소모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살아가시라, 적으면 상담 끝. 오케이, 이 주 동안 원고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이번주는 쉽네. 룰루랄라, 한쪽 다리를 떨면서 자판을 두들겨댔던 것이 사실이다. 한데, 이게 웬일? 룰루랄라, 원고를 다 쓰고 보니 평상시 원고량의 반의 반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끝나고 만 것이었다. 엇, 이상하네? 행갈이를 더 해야 하나? 왜 이렇게 짧게 끝나지? 베르바토프에다가 드로그바, 박지성 헤어스타일까지 더 써야 하나? 채 에이(A)4 한장도 채워지지 않은 원고를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결국 이 문제의 핵심이 외모나 성형, 혹은 타인의 욕망 문제와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또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 그러니 어쩌나? 다시 쓸 수밖에. 어쨌든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대화, 대화의 방식에 있는 것이니….

들어봐라. 아내와 연애 초기 시절,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대화였다. 아내의 말투가 느릿느릿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에이(A)를 물으면 에이(A)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무작정 비(B)나 시(C)로 넘어가는 것이 도통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일테면 이런 식. “아침 먹었니?” “어젯밤엔 친구랑 새벽 늦게까지 통화를 했어요.” “아니. 아침 먹었냐고?” “친구가 엄마 때문에 힘들어해서요.” “그래, 그랬구나. 한데 아침은?” “나도 마음이 짠해서 혼났어요.”

아아, 그런 식으로 아내와 통화를 하다 보면 거의 환장할 지경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그래서 아침을 먹었다는 거야, 안 먹었다는 거야?”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는데, 아내는 그제야 겨우 “안 먹었어요”라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곤 했다. 그 대답 하나 듣기 위해서 대여섯번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에는 답답하고 심장병 비슷한 것을 얻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되었다. 실은 아내는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는 것. 문제는 듣는 내가 그 이면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 왜? 나에겐 그때까지 대화란 그저 ‘정보’의 교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오늘 질문한 내담자가 겪고 있는 상황도 엇비슷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성형수술한 것을 숨기느냐, 고백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대화가 이렇게 정보와 정보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그래서 진실과 거짓, 그 둘 사이만 오락가락하게 되었는가? 그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대화란, 그리고 그 대화가 주는 관계란 과연 무엇인가? 이게 무슨 인사청문회라고 이리도 간편하단 말인가?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자, 그러니 정리하자. 성형수술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담자는 회피하고 싶은 진실을 묻는 질문들과 많이 맞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내담자는 같은 고민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때 내담자가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질문의 방식이다. 그가 나의 정보를 원하는가? 혹은 나의 내면을 원하는가?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겐 그냥 정보를 주어버려라. 그는 당신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사람도 아닐 것이다. 십중팔구 관계도 거기에서 멈출 것이다. 하지만 내면을 원하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경우엔 당신이 성형수술을 했든, 살인을 저질렀든, 도둑질을 했든, 그 진실과 마주하고서도 당신 곁을 지킬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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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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