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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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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Q 임신중인 아내 두고, 내 마음에 들어온 다른 여자 어찌해야 할까요
결혼한 지 2년 된 34살의 회사원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 동료가 맘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료와 같이 일한 지는 5년쯤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낸 건 아니었고요. 오며 가며 인사 정도 하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자꾸 생각나고 그러더니 어느 순간 제 마음에 있더라고요. 제 아내와 비교해 그 동료가 나은 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아내는 누가 보더라도 예쁘다고 할 만한 외모에 성격도 착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저보다 철이 든 편이고요. 그런데도 그 동료에 대한 마음이 접히지 않습니다. 뭘 어떻게 해볼 자신도 없으면서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게 그 친구를 대하는 절 느낄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다행이라면 그 친구는 제가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거죠. 이러다 회식 자리 같은 데서 술이라도 먹고 실수를 할까 봐 겁이 납니다. 사실 제 아내는 지금 임신 3개월째인데요. 흔히들 하는 얘기로 아내가 임신했을 때 딴마음 생긴다는 말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냥 지나가는 바람일까요. 아내에게 미안해 죽겠습니다. 제가 사고 치기 전에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A 사고 치지 않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아니, 이런 경운 십중팔구 사고 못 치는 상황이 될 터인데, 도대체 이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게 더 궁금할 지경이다. 설령, 회식 자리에서 억병으로 취해 고백을 했다 쳐도, 그 친구는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헛개나무 유산균을 살포시 건넬 가능성이 크다. 왜? 그 친구 또한 당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지금 당신이 얼핏 생각하는 것처럼 그 친구 역시 ‘이건 그냥 예비아빠의 객기’이구나, 지레짐작 단정 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오늘의 문제는 상대가 아닌, 당신의 문제, 당신의 상황 문제가 맞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건 없다. 당신이 그녀에게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을 잡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이건 주름살 잔뜩 만들면서 심각하게 대할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전자라면 너무 복잡한 문제여서 내가 섣불리 말할 순 없었을 것이다).
자, 잘 들어봐라. 내 얘기다. 첫아이가 생기고 몇개월이 지났을 때였던가, 이상하게도 근무하고 있던 방 벽에 박혀 있던 못을 오랫동안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더랬다. 액자나 시계 따위를 걸기 위해 박아놓은 못일 텐데, 그 평범하고 녹슨 못에 자꾸만 눈이 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못을 보면서 자꾸 나쁜 상상을 했더랬다. 그때까진 평생 자살 따위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전조 같은 것도 느끼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하루 이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과 아는 선생님께 그 얘기를 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상황만 조금씩 다를 뿐, 나와 흡사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임신우울증’이 산모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함께 찾아온다는 것, 그걸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히 그 원인과 증상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미치는지 말해줄 순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경험이나 의견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엇비슷한 것이 많았다. 첫째는 자신 또한 자신이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똑같이 닮아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케이스였고, 둘째는 양육과 관계된 경제적인 스트레스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종족번식의 임무를 수행하는 개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제 그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는 허탈감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둘이었던 관계가 이제 셋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사랑의 배분량도 줄어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가 자신에게 배당된 아내의 사랑을 앗아가고 말 거라는 무의식, 거기에 세상 모든 예비아빠들의 우울증이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아아, 남자들이란 만날 응석만 부리고 싶은 존재들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티내서도 안 되고, 그러면서도 가슴은 자꾸만 허해져가고, 그러니 자꾸 우울증이 찾아오고, 괜스레 바람도 피우고 싶고 그러는 것이다.
내가 자꾸 이런 말로 몰아가는 것은, 당신이 호감을 갖게 된 직장 동료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그러면서도 계속 아내와 비교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직장 동료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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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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