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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1 10:14 수정 : 2010.11.13 12:09

일에 지쳐 ‘꿈’을 이용하지 않나요?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Q 서른 앞두고 밴드드러머의 미련이 꿈틀거려요

연예인 매니저를 하는 이십대 후반의 남자입니다. 이 일을 한 지 벌써 4년째인데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만 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재미삼아, 그 뒤엔 적응돼서, 지금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원래 꿈은 밴드 드러머입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거리공연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매니저 일을 시작한 건 제대 뒤입니다.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싶어서인지 밴드에 대한 미련이 꿈틀거립니다. 이제 곧 서른인데 매니저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회의도 들고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이 됩니다. 밴드로 먹고살기 힘든 건 알지만 미루다 보면 영영 멀어지는 꿈이 될 거잖아요. 하지만 좋아서 한 뒤엔 어쩔 건데 하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서랍 속에 넣어둔 사표를 제출하고 자신있게 새 세상으로 향한 문을 열고 나오면 되는데 그게 안 됩니다. 그 문을 열기가 쉽지 않아요. 도화선에 누가 불을 붙이지 않으면 터지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장기적인 비전을 못 찾았으나 안정적인 일과 고정수입을 포기하지 못해서일까요. 마음은 이미 콩밭에 있는데 밭매러 나가지지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A 자, 잘 들어봐라. 알고 지내는 후배 중 인디 쪽에선 나름 알아주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벌써 10년 가까이 홍대 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인데, 음반도 석 장이나 냈고, 얼마 전엔 일본의 알아주는 레이블사와 계약도 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은 ‘와, 그럼 이제 너 롯데마트에서 박스 나르기 안 해도 되는 거냐?’였다. 이게 무슨 말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아들을 터. 그럼 곧장 다음 사례 하나 더. 역시 알고 지내는 작가 중 낮에는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쓰는, 말하자면 ‘투잡’을 기본원칙으로 꽤 오랫동안 생활해온 선배가 한 분 계신데,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이 양반은 술만 마시면 ‘내가 전업으로 소설만 쓰면 이것들을 다…’ 운운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도 꽤 여러 번 들은 소리이니 선배의 와이프야 말하면 무엇하랴. 해서, 선배의 와이프가 도화선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전업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선배는 전업 생활 2년 동안 소설은 한 편도 못 쓰고, 사보나 관공서 홍보물에 콩트와 수필만 잔뜩 쓰다가 다시 학교로, 기간제 교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다시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말씀. 이 또한 이런저런 해석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아들었을 터.

핵심은 ‘직업’이란 말과, ‘꿈’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 그 안에 들어 있는 ‘생계’라는 의미와, ‘바람’이라는 어휘를 각각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쳐서, 그 일에 진력나서, 어쩌면 그 알리바이로서 ‘꿈’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화선을 찾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상담 메일을 보낸 것도 그렇다. 객관적으로 판단해보면, ‘매니저’와 ‘밴드 드러머’는 같은 반열에서 선택을 고심할 비교 대상이 결코 못 된다.(알리바이를 찾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 중 하나가 ‘객관성의 결여’이다.) ‘A’를 대체할 ‘B’가 아니라는 소리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당신이 4년 가까이 매니저 생활을 할 동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죽어라고 드럼만 두들긴 친구들이 너무 많다. 그 친구들은 대개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거나, 선택 같은 것을 하지 않은 친구들이다. 그런 경우에만 겨우 ‘꿈’과 ‘직업’이 하나되곤 한다. 이건 뭐 선택 자체가, 비교 자체가 봉쇄된 케이스들이니까.

그러니 정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고 괴로우면 다른 직업을 알아봐라. ‘꿈’을 위해서 사표 낸다고 하면, 당장은 폼 나겠지만, 그 뒤에 남는 건 ‘꿈’에 대한 원망뿐이다. 그 원망을 또 어찌 감당하려고 이러시는가?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사실, 미리 예고는 안 했지만, 오늘이 내가 이 코너를 쓰는 마지막 날이다. 벌써 몇 달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한겨레>에 여러 번 전화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아리따운 담당 기자의 목소리에 홀라당 넘어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처음엔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의 무게에 내가 짓눌려 소설은커녕 문장 자체를 쓰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고민을 듣는 것만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을 다시 재단하고 분석하고 심지어 훈계 비슷한 것도 해야 했으니, 그것이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소설가는 누군가를 훈계하려 들 때, 그때가 제일 위험한 순간이다. 그것 하나를 잘 배우고 물러난다.

아울러 이 코너의 이름에 ‘독고다이’라는 일본식 어휘가 들어가서 불편한 분들이 여럿 계셨을 거라 믿는다. 변명 같지만, 그건 내 식대로 풀자면 ‘독(獨) 고(go) 다이(Die)’, ‘홀로 가다가 죽자’라는 뜻이었다. 그게 내가 이 코너로 메일을 보내준 많은 분들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이기호 소설가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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