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5.19 17:09
수정 : 2010.05.28 18:21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S의 식성은 참 독특하다. 쥐포를 구우면 노릇노릇 잘 익은 부분은 팽개쳐두고 거뭇하게 탄 부분만 떼어 먹는다. 오징어를 먹을 땐 속칭 ‘귀때기’로 불리는 지느러미부터 챙긴다. 과자를 먹을 때도 기다렸다 부스러기만 입에 톡 털어 넣고, 식빵은 껍질만 기술 좋게 홀랑 벗겨 먹는다. 닭튀김도 튀김옷과 닭껍질부터 발라내 자신의 몫으로 거둬가기 마련이다. S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작아작 소리 나게 덜 익은 라면과 차갑게 식은 돼지 염통이다.
S가 없는 자리에서 우린 먹기 곤란한 음식을 볼 때면 항상 그녀를 떠올렸다. 이를테면 식어빠진 조개탕을 들여다보며 S가 있었더라면 껍질마다 질기게 붙어 있는 관자를 깨끗이 먹어 치웠을 텐데, 아쉬워했고, 삼겹살에 붙은 오도독뼈나 기름을 흠뻑 먹은 튀김옷 같은 것도 S의 연관 검색어였다.
요즘 S는 바쁘다. 돌아오는 가을에 치를 결혼 준비 때문이다. S의 애인은 미식가로 주말이면 그녀를 데리고 전국의 맛집 기행에 나선다고 했다. 처음 S가 자신의 애인을 친구들 앞에 선보인 장소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아주 근사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가 S의 식성을 바꿔 놓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만난 S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초밥집에서 초밥보다 꾸밈채소로 나온 상추와 파슬리를 간장에 찍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S에게 물었다. “신랑은 이런 네 식성도 예쁘다 하디?” S는 접시 한편에 수북이 쌓였던 생강절임을 한 젓가락에 집어 된장국에 푹 담갔다 입에 가져가며 대답했다. “나도 그이가 이런 데 와서 초밥만 먹고 일어나는 거 참아주잖아. 치킨 먹을 때 다리만 골라 먹고, 오징어 먹을 때 몸통만 먹는 것도 다 이해해주는데 뭐. 그래서 말인데, 집들이 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차리려고.”
그랬다. S는 지금껏 ‘이상한’ 음식만 골라 먹는 ‘이상한’ 친구들과 ‘이상한’ 애인을, 우리가 그랬듯 그녀 또한 이해하고 참아주었던 거였다. 이해와 인내가 결혼의 기본요건인 건 분명하다. 그러니 S의 결혼생활은 행복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아직 이해와 인내에 서툰 나는 그녀의 집들이가 두렵기만 하다.
강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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