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16 18:16
수정 : 2010.06.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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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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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수년 전 여름, 친구 셋과 무전여행 비슷한 걸 떠난 적이 있었다. 휴가를 한 날짜에 맞춘 우린 각자 만원씩을 챙겨 이박삼일 동안 발길이 닿는 곳에 짐을 부리고 숙식을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여행을 시작한 지 고작 세 시간 만에 우린 길가에 퍼더앉아, 왜 사람들이 수십개월 동안 할부금에 허덕이면서도 자동차를 사는지, 휴가 몇 주 전부터 바지런히 숙박을 예약하고 맛집을 검색하며 요란을 떠는지를 깨달았다. 체격과 체력이 반비례했던 나와 한 친구는 배낭을 팽개치고 흙바닥에 벌렁 드러누웠고, 다른 한 명은 당장 프라푸치노를 마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칭얼거렸다. 그러나 이미 국토순례를 두 차례나 경험한 또다른 친구는 우리의 의지박약을 호되게 꾸짖으며, 여행을 계속하자고 독촉했다.
우리는 프라푸치노 대신 슈퍼마켓에서 산 커피우유를 마시며 여행파와 귀가파를 나눠 행보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도파인 나와 친구 한 명이 수도 없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통에 편 가르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러자 여행파 친구가 “데덴찌해서 머릿수 많은 쪽 의견에 따르자”고 제안했다. 그때 나는 “데덴찌가 뭔지 모르지만 그냥 엎어라 뒤집어라로 결정하는 게 어때?” 했고, 또다른 친구는 “우에시다리로 하자, 그게 공평해!” 가리를 틀었다.
한참 만에야 우리는 ‘데덴찌’와 ‘엎어라 뒤집어라’, ‘우에시다리’가 같은 뜻이란 걸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알아보니 ‘이시도사미’, ‘소라미가에치’, ‘찜뽕’같이 지역별 편 가르기송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가 편을 가를 때 ‘엎어라 뒤집어라’를 외치는 줄만 알았던 나는 그게 고작 경기도 일부지역에서만 통용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쨌거나, 그날 여행을 접은 건 말이 안 통해서가 아니라 초저녁부터 시작된 장맛비 때문이었다. 여름휴가 내내 우린 추적추적 쏟아지는 장맛비를 안주 삼아 맥주만 마셔댔다. 술배만 불렸다. 그때 함께 여행을 떠났던 친구들은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을까? 알 수 없고, 캐내서도 안 될 일이다. 다만 우리들 모두가 ‘말’이 아니라 ‘뜻’이 같은 후보자를 선택했기를 바랄 뿐이다.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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