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8.25 17:56
수정 : 2010.08.25 17:56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러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던 고향 집에 좀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의 간이 작은 탓인지 사라진 물건이라곤 부엌 한 귀퉁이에 쌓아놓은 복숭아통조림과 라면 몇 봉지가 전부였다. 이웃들도 낡은 손수레나 호미, 늙은 호박 따위가 사라졌다며 부아를 냈다. 다행히 몸이 상한 사람도 없었고, 피해 금액도 적은 탓에 사람들의 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우리 가족은 달랐다. 할머니는 이웃집 노총각을 범인으로 지목하며, 언젠가 그가 가게에서 복숭아통조림과 라면을 사들고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우리 집에서 사라진 것들과 제조회사가 같았다는 예리한 지적을 해냈다. 더구나 낮엔 집 안에 콕 틀어박혔다 밤만 되면 기어 나오는 것도 영 예사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노총각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주 오래전에 할머니에게 십만원을 꾸어갔다 영영 오리발을 내밀고 갚지 않았다는 거였다. 할머니는 도둑놈 심보가 어디 가겠냐 하시며 노총각을 범인으로 단정했다.
우리 가족은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나름의 자구책을 고안해 냈다. 가스총이나 전기충격기가 보편화되기 전이었고, 외진 마을이라 신고가 있기 전까진 경찰이 순찰하는 일도 드물었다. 이 때문에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몹시 매운 청양고추 가루 한 줌을 얻어 오셨다. 그걸 종이에 감싸 머리맡에 두고 그 옆엔 길이가 어른 팔만한 커다란 톱을 세워두셨다. 도둑이 나타나면 일차적으로 고춧가루를 얼굴에 뿌리고 놈이 눈물 콧물을 짜는 사이 톱으로 위협을 한 다음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삼단콤보계획이었다. 할머니 또한 개도 없는데 대문에 개조심이라 커다랗게 써 붙였다. 도둑은 그해를 넘기지 않고 자수했다. 외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내 또래의 아랫말 소녀였다. 소녀는 훔쳐간 물건들을 먹지도 팔지도 않은 채 커다란 상자에 담아두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머쓱한 얼굴로 복숭아통조림을 돌려받고 이튿날 장에서 사온 진짜 복숭아를 그 집 문턱에 놓아주었다. 그러곤 대문간에 붙여 둔 개조심 경고문을 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혼잣말을 했다. 그 혼잣말이 죄 없는 노총각을 의심한 미안함인지, 미처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미안함인지 알 길이 없었다.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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