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11 10:12
수정 : 2010.11.11 10:12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작년 이맘때, 텔레비전을 보던 친구가 화면 속 붉은여우를 가리키며 고양잇과 동물은 참 날씬하지 않니?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여우가 무슨 고양잇과냐 물었고, 발끈한 친구는 바득바득 여우는 고양잇과이며, 수년 전 백과사전에서 분명 읽은 기억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여우가 개과라는 나의 주장과 고양잇과라는 친구의 주장이 불꽃을 튀기던 그때,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또다른 친구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소중한 뭔가를 걸고 내기를 해보라는 거였다. 여우가 고양잇과가 아니라는 걸 확신한 나는 대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친구는 시시하게 돈이나 물건을 걸지 말고 뺨따귀 백 대가 어떠냐며 자신의 확신에 쐐기를 박았고, 중재자로 나선 또다른 친구는 재빨리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검색창에 모래시계가 서너번 뒤집히는 동안 우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손가락을 풀었다.
결과는 나의 승리였다. 여우는 식육목에 속하는 개과의 포유류였고, 그걸 뒷받침할 만한 수백 건의 자료가 쏟아졌다. 친구는 자신의 형편없는 기억력을 원망하며 눈을 질끈 감고 뺨을 내밀었다. 그러나 대인배인 나는 친구의 뺨따귀를 때리는 대신 한 대당 만원씩, 총 백만원을 친구에게 대용해 준 셈 치기로 했다. 이후 나는 찻값이나 밥값을 계산할 때 그날의 뺨따귀를 적게는 한 대, 많게는 서너 대씩 탕감해주며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으스대곤 했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9월. 나는 다시 한번 내기 제안을 받았다. 이번엔 여우사건 당시 중재자로 나섰던 또다른 친구가 매미를 갑충이라 우기며 벌어진 사달이었다. 이번 내기 역시 진 사람이 뺨따귀 백 대, 또는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빚으로 떠 앉는 조건이었다. 물론 결과는 시골 출신인데다, 확신이 없으면 내기를 하지 않는 영악한 나의 승리였다.
두번의 내기로 나는 현금 이백만원과 ‘잡학다식의 여왕’ 자리를 꿰차게 됐다. 이제 나는 누군가와 싸움이 붙더라도, 주머니가 가벼워 낭패를 보게 생겼더라도, 언제나 전화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나올 달콤한 채무자가 둘이나 생겨 버렸다. 아, 정말 행복하다.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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