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1.25 10:27 수정 : 2010.11.25 10:27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소설을 쓰기 전에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외환위기가 막 터졌을 때 사회에 진출했지만, 운 좋게 졸업한 즉시 직장을 얻었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참 열심히 뛰어다닌 것 같긴 하다. 돌이켜 보면 아쉬운 것도 많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신분을 증명할 명함이 있었고, 매달 허룩한 통장을 채워주는 월급이 있었다. 사무실에선 골이 터지게 볶여도 퇴근하고 나면 시름이 없었다.

내가 전업 작가가 되는 데 크게 일조한 사람은 마지막 직장의 이사였다. 40대 후반의 호리호리한 귀부인 스타일의 그녀는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커리어우먼이었다. 일도 깔끔하게 하는 편이고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너그러웠다. 그런데 문제는 입이었다. 그녀는 여러 사람에게 너무나 쉽고 사사롭게 남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를테면 ‘이 팀장은 지각이 너무 잦아, 게다가 툭하면 구실을 만들어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니까. 아무래도 정리하는 게 낫겠지?’ 타인의 동의를 구한다. 그래 놓고선 이 팀장과 대화할 땐 다른 직원들의 문제를 툭툭 던져 놓고 정리를 운운했다. 그걸 뻔히 지켜보는 나는 이사 편에 서야 할지 직원 편에 서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달은 이 팀장의 지각에서 시작됐다. 이사는 오늘도 이 팀장이 지각을 하면 정리하겠노라 내게 엄포했고, 나는 다급히 전화를 걸어 어떻게든 출근을 해서 퇴사 위기를 모면하라고 전했다. 그러고 몇 시간 후, 이 팀장이 회사에 출근해 이사에게 불려갔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사건의 불똥이 난데없이 내게 튀었다. 회의실에서 나온 이사는 이 팀장이 아닌 내게 화를 퍼부었다. 지각하면 정리하겠다는 자신의 엄포를 고자질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사는 그동안 나를 포함한 직원들이 모두 작당을 하여 자신의 뒷담화와 회사 기밀을 떠들었을 거라며 열을 냈다. 회의실에서 나오지 않은 이 팀장이 내게 ‘미안해요, 그렇게 됐어요’ 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말은 곧 칼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특히 직장생활에선 더욱 그렇다. 가벼운 입, 고자질하는 입, 뒤늦게 사과하는 입. 직장생활이 순탄하려면 입부터 단속하는 게 상책이다.

강지영 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