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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27 14:38 수정 : 2011.01.27 14:38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10년 전만 해도 비디오대여점에 가면 성인코너에 무수한 에로영화가 즐비했다. 성인인증절차도 간단했다. 주인이 인상착의를 재빨리 스캔해 성인과 청소년을 분별하는 게 전부였고 간혹 시력이 나쁘거나 인심이 좋은 대여점에선 이마저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친구와 내가 자주 이용하던 곳은 후자에 속했다. 무슨 까닭인지 친구의 집 앞 비디오대여점은 수요일마다 주인인 중년 남자 대신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손님을 맞았다. 그걸 알게 된 우리는 수요일마다 엄마 립스틱을 바르고 비디오대여점을 찾았다. 할머니는 얼굴이나 옷차림, 비디오 제목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지 매번 별말 없이 비디오테이프를 내주고 묵묵히 대여료를 챙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가 눈독 들인 에로비디오들마다 ‘대여중’ 표시가 붙어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수요일을 기다리는 청춘들이 우리뿐이 아니라는 심증을 굳혔다. 사실 그 무렵 친구와 나는 수십편에 달하는 에로비디오를 이골이 나게 본 터라, 제목만 다르다 뿐 내용은 대동소이한 빨간 영화에 물려 있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경쟁자들에게 밀리고 있단 생각이 들자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수요일 우리는 옷 갈아입는 시간조차 아까워 교복 위에 반코트나 커다란 머플러를 둘러 간이 변장을 하고 비디오대여점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그러나 비디오대여점 안에는 양 볼에 여드름이 닥지닥지한 소년 한 무리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차마 그들 앞에서 에로비디오를 고를 수 없어 억지춘향으로 멜로영화 한 편을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할머니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고객카드를 받아 바코드를 찍더니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어 라벨조차 붙어 있지 않은 비디오테이프를 비닐봉투에 담아주었다. “원래는 3000원인데 한 번은 서비스야.” 나직하고 은밀한 코멘트와 함께.

할머니가 서비스로 준 비디오테이프는 에로영화가 아닌 일본 포르노였다. 우린 그 충격적인 영상을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무인반납기를 통해 돌려주었다. 그 후 어느 수요일, 대여점 앞을 지나던 나는 돋보기도 쓰지 않은 할머니가 신문을 읽는 걸 목격했다. 스릴러와 코미디가 뒤섞인 에로영화에서 반전까지 맛본 기분이었다.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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