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03 10:01
수정 : 2011.03.05 13:25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할머니의 된장찌개 맛은 일품이었다. 할머니는 매년 메주를 띄워 된장을 담그신다. 염치없지만 플라스틱 통에 든 공산 된장을 믿지 못하는 나는 매번 할머니의 신세를 지고 만다. 국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누르께하게 잘 발효된 된장을 풀고, 나박나박 썬 애호박과 양파, 두부를 썰어 넣으면 제법 먹을만한 된장찌개가 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먹을만한 정도일 뿐이지 할머니의 된장찌개처럼 일품이라든가, 내다 팔아도 손색이 없겠다 같은 극찬을 듣기엔 면구스러운 맛이다.
육수가 문제일까 싶어 멸치 대신 쇠고기, 북어, 버섯, 사골국물까지 써봤지만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맛있는 된장찌개 끓이기를 포기하고 소설을 쓰기로 했다. 소설 속 주인공 할머니 역시 기가 막히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는 자신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그 맛에 홀려 재벌총수나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까지 할머니의 오막살이를 찾았다. 누구든 한번 맛보면 혀가 놀라 입이 떡 벌어지는 된장찌개 덕에 할머니의 집은 설악옥(舌愕屋)이라 불린다. 할머니의 비법을 탐내는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설악옥 마당은 매일 굿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할머니는 끝내 비법 재료를 알려주지 않고, 장독이 동이 나도록 사람들에게 된장찌개를 대접한다. 마지막 장면에선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아들이 뉴스를 보고 돌아온다. 할머니는 아들에게 마지막 남은 된장을 박박 긁어 찌개를 끓여준다. 감격스런 표정으로 된장찌개를 떠먹은 아들이 넌지시 된장찌개의 비밀을 묻는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을 빙자해 맨입으로 된장찌개의 비밀을 얻어내려는 속셈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일품 된장찌개의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할머니를 닦달했다. “너만 알고 있어. 된장찌개는 말이다 미원이 좀 많이 들어가. 찻숟가락 있잖냐, 그걸로 하나 듬뿍 넣고 내처 끓여. 단내 나기 전까지. 바빠서 끊는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소설 마지막 대사를 썼다. 그리고 할머니의 비법대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익숙하고 진한 맛이 났다. 근데 배신감이 밀려드는 이유는 뭘까. 하아.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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