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31 10:56
수정 : 2011.03.31 10:56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1년에 세 번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직업도 성격도 판이하지만 한때 같은 회사에서 동고동락한 인연으로 만남을 이어왔다. 평소엔 일절 연락도 않지만 우리들 중 누구의 생일이 있는 달이면 조촐하게 저녁이나 먹자고 무심히 만남을 청하곤 한다. 물론 거절은 없었다. 아무도 규칙을 만든 사람은 없지만, 우린 암묵적으로 생일을 통해 빚을 탕감하는 채무·채권자들이었다.
시작은 이랬다. 몇 년 전 한 직장에 근무하던 시절, 우리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았던 내게 ㅊ과 ㄱ이 꽤 고가의 생일 선물을 한 적이 있었다. 뜻밖의 정성에 적잖이 감동한 나는 내 주머니 사정과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식당에서 둘에게 한턱을 냈다. 그러고는 얼근히 취해 휘청휘청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다 ㄱ이 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돌아가며 이런 입호사를 누리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나는 다음달 카드 명세서가 두려웠지만, 그래 봐야 1년에 딱 사흘 정도인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어진 모임 이름은 연중삼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모두 이직을 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애인, 새로운 가족과 적응하느라 연락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모임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원하는 선물을 사전에 공지하고, 총액과 엇비슷한 식당을 골라 저녁을 먹었다. 딱히 원하는 선물이 없으면 자신의 생일에 받았던 선물과 비슷한 수준으로 액수를 맞춰 화장품이나 속옷 등을 준비했다. 급기야 언젠가부턴 생일이 있는 달 외에는 전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이상한 관계가 되었지만 모임을 해산할 명분을 찾지 못해 다들 뚱한 얼굴로 연중 삼일을 만났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인간관계는 빚지고 갚는 행위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그 얄팍한 수지타산이 관계를 만들고 또 깨기도 한다. 작년부터 연중삼일 정기모임이 중단되었다. 마감을 이유로 한 차례 모임을 펑크 낸 내 탓이었다. 나로 시작된 이 의무적인 만남이 나로 인해 깨진 것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에서 해방된 기분이 꽤 후련했다. 뭐, ㄱ과 ㅊ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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