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남기자 T의 ‘마흔전야 사춘기’
명색 남잔데 축구에 관심 없고, 잠시 관심 있는 척했더니 잘 모른다며 무시한다. 별꼴이다. 한국-그리스전 다음날 온통 축구 얘기길래 나도 한마디. “염기훈 걔 뭐냐?” 했다가 “너 뭐냐”며 헤딩, 태클 막 들어와 들것에 실릴 뻔했다. ‘외로움’은 늘 사소하게 깊어진다.(이번까지 지겹게 외로움을 논하는 이유다) 결혼도 바람도 이혼도 모두 외롭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라고 이 연사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쳤는데, 실은 좀 외로우면 어떠냐 하는 쪽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데, 외로움이 타이거즈가 연고지를 대구로 옮기겠다는 것만큼 절망적이지도 않고, 박주영이 자살골을 넣은 뒤엔 기도하지 않는다는 걸(농담이야, 주영. 넌 잘했어) 발견한 것처럼 아주 새로운 일도 아니잖나. 그러니까 문제는 ‘외로움’ 자체도 아니겠다. 삶은 ‘인정투정’이랄까. 기실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어떤 ‘무능’에 대한 공포가 수컷에겐 크다. 외로운 남자 모두가 찌질하진 않지만, 찌질한 남자는 정말 보면 다들 외롭다, 이 말이다. 회사의 남성 상사가 혼자 밥 먹는 걸 보면 왠지 불경한 짓을 한 것 같다는 친구가 있다. 당시 여건이 뭐든 따지기 전, 상사의 외로움, 외로움 너머 찌질함, 찌질함 너머 인정받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훔쳐본 것 같아서다. 사오십대는 권력과 재력이 있잖나, 며 많은 가치를 내다 버리던 삼십대 수컷은 그게 제 미래일 것 같아 ‘식겁’한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아예 상사들의 그런 처지는 보고 싶지 않다며 일찌감치 약속 잡아 나간다. 더럽게 착한 인간이다. 살아가고 성공하는 게 적을 쌓는 일이란 뻔한 진리가 맞다, 언어장애에 10번 밥 먹자 해야 한번 먹자 회신 오는 남자의 운명도 수긍하자, 해도 상급자가 부하 직원들과 점심 먹자 이끌고 조르고, 저녁은? 술도! 열심히 약속을 잡는 풍경은 하여 더 짠하고 절박하다. 특히 여성들은 보무도 발랄하게 그 상사 꼰대냐 아니냐, 재미있냐 없냐로 자리를 가린다지만 정말일까 의심스럽고, 그것만으로도 수컷들이 제 찌질함의 일단을 읽는 데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사람 좀 모아보라는 상사의 제안(명령?)은 와닿지만 한편으론 곤란하다. “다음주에 저녁할까?” “바쁜데요.” “그럼 그 담주엔?” “휴가 가려고요.” “다음달엔?” “열심히 일해야죠.” 본인의 찌질함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밥 먹는 여성은 쿨합네, 합리적입네 하면서도 혼자 밥 먹는 남성은 왜 그냥 찌질해 보일까. 미스터리다. 하지만 궁극은 닮는 것 같다. “언제 노처녀가 되느냐”는 질문에 “회사 회식에 끝까지 남기 시작할 때”라는 답처럼, 삶은 늘 외로이 먹고 싸는 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연속이다. 다들 제자리 찾고, 확보하고, 인정받자는 거다. 이제 축구 얘기 하는 데는 안 간다.(남 시선 뭘 그리 신경 쓰냐고? 말했잖니, 찌질해서라고)사춘기 고백 및 고발 demia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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