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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1 20:51 수정 : 2010.09.01 20:51

[매거진 esc] 남기자 T의 ‘마흔전야 사춘기’

올해 지인들의 결혼이 줄섰다. 세기말처럼 불안할 때 결혼이나 콘돔 판매량이 는다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 결혼도 는 것인지, 지난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근거리 부서에 미혼 동료가 발령받아 올 때마다, 회사가 경력을 채용했는데 하나같이 미혼일 때(특히 남자로) ‘젠장 젠장’을 토한다. 부조가 꼭 주고받는 거냐고, 나도 결혼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곱씹지만 좁아 비틀어진 속이 돌을 삼킨 것처럼 컥컥 막힌다. 새삼 대단해 보이는 건, ‘공인’ 독신남이나 동성애자 동료의 의연한 축하 자세다. 가족도 없이 갈비탕 한 그릇을 5만원, 10만원에 먹는 기분, 그러나 절대 품앗이는 받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유쾌할 리 없을 텐데, 꽤나 부지런히 식장을 오가며 웃어도 웃는 게 아니란 뻔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잘하는 이들은 더 잘하니 더 그렇다. 친구 A는 결혼 한달 만에 이혼했다. 2년여 뒤 거듭 하객 앞에 섰다. 종종 만났으나 절대 비밀로 하다 새 결혼을 설명하기 위해 이혼 사실을 밝혔던 약간의 황당함이 있었지만, 첫번째 결혼식의 조금은 과장되고 한편 경직된 몸짓이, 두번째에선 낮아지고 자차분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B는 24살에 결혼했다가 1년여 만에 이혼했다. C도 1년이 조금 넘어 이혼했다. 결혼까지 물경 10년을 연애한 사이다. B, C 모두 아기는 전처가 기르고 있다. D는 청첩장만 돌렸다. 결혼은 어그러졌다. 뭐, 흔한 사연들이다. 대부분 새 결혼을 해 잘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무엇 하나 쉬웠겠나 싶다. 해서 축의금이 실은 위로금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막상 멋진 새 신부가 옆에 선 걸 보면 (과장 좀 해) ‘저 녀석 이혼했거든요’ ‘혼인 신고 안 했거든요’ 죄다 폭로하고 싶은 마음, 과거 사진을 축의금 봉투에 담아 신부 쪽에 전하고 싶은 마음 따위가 갈비를 씹어 삼켜야 조금 눌러진다. 그렇다고 이혼을 바랄 수도 없다. 또 하면 어쩌나.

생물학자들은 교태, 섹스, 결혼 모두가 저 자신을 복제하기 위한 ‘생식 전략’의 각본들이라 정리한다. 그런데 정말 내가 예쁜 딸 하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거나, 어떤 결핍도 없어 보이는 커리어우먼이 결혼은 별로인데 애는 하나 낳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생식 전략’의 가공함을 본다.

지난해 그런 욕구가 부쩍 늘더니, 이젠 ‘결혼 못 할 것 같다’ ‘안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속수무책 커진다. 26살에 장가를 보내는 게 목표였다는 아버지가 들으시면 니킥을 날릴지도 모른다. 다들 멋스럽게 독신을 꾸미거나 떠안던데, 신혼여행 뒤 만나는 사람마다 제 결혼식에 낸 축의금액이 이마 한가운데 새겨져 있다는 마법의 세계도 경험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마흔이 난 아리다.

한 인문학자는 “이른 결혼의 유일한 장점은 빨리 이혼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도 했는데, 난 너무 늦었다. 단호하게 결정해야 할 때다. 생식 전략 달성이 불가능하다면, 나라도 살자. 축의금은 이젠 무조건 3만원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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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남기자 T의 ‘마흔전야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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