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16 09:43
수정 : 2010.09.16 09:43
[매거진 esc] 남기자 T의 ‘ 마흔전야 사춘기’
가수 이은미씨의 노래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듣고서 ‘애인 있어요’를 듣는 건 맞지 않다, 거북하다. ‘애인 있어요’를 듣고서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듣는 게 나는 좋다. 아니 어쩌다 ‘애인 있어요’를 들었다면 반드시 ‘헤어지는 중입니다’까지 이어 들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 흔하고 뻔한 절망과 신산들이 세상의 대저 이치라고 나는 본다.
그러면 주변에선 면박한다. “넌 왜 늘 그리 울상이냐?” “뭐 그리 궁상이냐?” “또냐, 너만 보면 나도 우울해진다.” 할 말 없고 미안해지다 매번 뒤돌아서선 웅얼거렸던 것 같다. ‘넌 뭐가 그리 즐거운데? 뭐 그리 행복한데?’
기자가 되겠다고 많지도 않은 입사시험에 아등바등하며, 떨어질 때마다 꺼이꺼이 우는 이들을 적이 봤다. 사(士·선비)는커녕 참 드물게 자(者·놈)를 직함에 달고 사는 이도 그러한데, 어느 직업인들 절박하지 않겠나 싶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기자란 놈들이 유일하게 진심 환대받는 곳이 있다면, 그건 기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앞이다.
하지만 그뿐인 게다. 연배를 거듭할수록 기사 쓰는 일이 고되다. 갈수록 다단한 세상, 진실이 무엇인지 자신하기 어렵고, 품들여 캐봤댔자 쓴 글은 읽히지 않은 채 휘발된다는 절망과 두려움에 늘 수척해진다.
사랑은 쉬운가, 조직 생활은 또 쉬운가. 하물며 선배 노릇도 쉽지 않다. 잘나지 않으면 착해야 하고, 착하지 않으면 밥이라도 많이 사야 하는데, 다 어렵다. 능력, 카리스마, 유머 감각, 포용력, 늘 들어주는 자세(따위를 다 가졌다면, 그곳 그 후배들의 선배나 하고 있진 않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어느 자습서에서나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그럴싸한 후배가 되긴 더 어렵다. 당장 인상부터 좀 펴라는데, 면전에서 받지는 못하고 뒷담화나 치는 거다. 넌 뭐가 그리 즐거운데, 넌 뭐가 그리 잘났는데.
정혜신 심리학자가 프로이트의 분석을 빌려 한 말마따나 “사람은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순서로 심리적 발달을 하며 성장”하는데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성인은 소아적 의존성을 가진 미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고, 항문기적 성향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강박적인 삶을 사는데, 그들은 세상을 경쟁의 원리에 따라 바라본다.” 반면 “남근기적 성향은 즐거움 자체를 추구한다. 경쟁과 완벽은 의미 없는 논리가 된다.”
그 잡다한 좌절을 견뎌내고 (또는 극복하며) 다가서는 마흔은 찬란한가. 불혹은커녕 못난 항문기에라도 비집고 들어서면 좋겠다.
기껏 좋아했던 핑클의 이진이 성유리처럼 변해버리고, 슈퍼스타K 2의 김보경양을 울어가며 응원했더니 2번이나 물을 먹이는 게 내가 사는 세상이다. 그러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세상 또다른 삼십대 사춘기들도 저마다 이고 있는 외로운 짐들로 그리 종종거리고 있을 것이다. 하여 오늘 건네는 마지막 인사는 조낸(몹시, 정말) 힘내시라다. 좀 찌질하면 어떤가. 유명환씨와 그의 딸처럼 반칙을 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사춘기 고백 및 고발
demia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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