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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아서라 이그’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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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콘서트 두드림] 〈18〉 아서라 이그
밥 안된다며 “아서라”던 엄마도 결국 “으이그”
통기타 등 소박한 악기 둘러메고 거리 거리로
호석 : 엄마, 나 음악하고 싶어요.엄마 : 아서라∼ 아서.
호석 :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엄마 :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 마지못해 한 마디) 으이그! “음악으로 ‘밥벌이’ 하겠다”고 선언한 이 밴드의 멤버들에게 가족과 친구들은 한사코 “아서라∼ 아서∼” 라고 말했다. “모두가 ‘아서!’ 라며 말릴 때, 좌절하지 않고 마음 다 빼앗겨 버린 ‘음악’은 꼭 해야겠다는 뜨거운 의지를 담았다”고 밴드 이름을 설명했다. 그래서 이 밴드는 ‘아서라 이그’가 됐다. “그래도 ‘아서라 이그’란 말을 좋아해요. 왜냐면, 이건 절대로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거든요.”(태범) #빗겨드는 석양을 배경 삼아…삼겹살 파티는 다음으로 이야기는 ‘옥탑방’에서 시작됐다. ‘아서라 이그’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샘솟는다는 곳이다. “옥탑방에 모여서 합주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순간 좋은 악상이 팍 떠오르면 합주를 해요. 그렇게 모아 놓은 것들을 들으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살을 붙이고요. 한 곡 완성하는데, 몇 달은 걸리거든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곡을 만든다는 분들이 참 부럽더라.”(호석) 오후 5시, 홍대 인근이 훤히 내다 보이는 옥탑방엔 석양이 먼저 기웃했다. 10분 넘게 우려낸 홍차는 점점 진한 오렌지색으로 변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빛과 닮았다. “바지 안에 감춘 쫄쫄이 내복은 벗을 수 없는 날씨 탓”에 다음을 기약한 ‘삼겹살 파티’를 아쉬워하면서 ‘아서라 이그’ 멤버 4인방(이호석/보컬, 김태범/퍼커션, 강병훈/콘트라 베이스, 한아름/피아노)과 마주 앉았다. #우연이 우연을 만나 필연으로…홍일점은 순수함을 잊고 “음악하다 보니 ‘한’이 많아서요. 이 걸 아버지가 꼭 보셔야 하는데….” (웃음) ‘아서라 이그’의 보컬이자 리더 이호석씨의 이야기다. 기계공학과 학생이던 시절, 그는 기타를 메고 홍대 앞을 거닐던 친구들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고 한다. 그 마음은 점점 커져 ‘진심’이 됐다. 그래서 스스로 뮤지션이 되기로 했다. 대학교 4학년, 등록금을 들고 집을 나왔다. 집을 떠나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 뒤로 3년, 지하방에서 세상 밖으로 기타를 메고 나왔다.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노래로 내 얘길 시작하니 들어주는 친구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범이는 미워(?)하던 군악대 후임이었는데, 밴드에 드러머가 필요해서 전화를 했죠. 이 녀석이 몇 번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눌러 앉더라고요.” (웃음) 드러머 김태범씨가 거든다. “호석형은 군악대에서 연구대상이었죠. 근데 왠 걸요. 사람이 깊이가 있어요. 진실만 얘기합니다. 제대한 뒤, 제안을 받고 합류 했죠.” (웃음) “반했죠! 우연히 홍대에서 아서라이그 공연을 보고 밴드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공을 바꿨죠.” 강병훈씨는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공이었던 ‘피아노’ 대신 ‘콘트라 베이스’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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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 ‘아서라 이그’ 멤버 이호석, 강병훈, 한아름, 김태범씨(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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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점이자 막내인 한아름씨는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생계를 위해 뛰던 행사에서 오빠들을 처음 만났는데, 저를 보는 눈빛이 뜨겁더라고요. 역시 절 알아본 거죠.” (웃음) 그는 피아노 연주만큼 노래 솜씨가 좋아서 보컬에 뜻을 두고 있다. “한 때는 피아노와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사춘기 소녀처럼 방황을 했다”는 후문이다. 옥탑방에서 흘리는 웃음 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름씨가 톡톡히 한 몫을 해냈다. “홍일점이라서 좋은 점은요. 오빠들 따뜻한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잘 크고 있죠. 그런데, 예전 같은 순수함은 잊게 돼요. 이제 알 건(?) 다 알고요. 오빠들로 인해서 강해졌습니다.” (일동 웃음) #앨범 내면서 ‘보물’ 기타 팔아…사업자 등록증도 버젓이 화려한 전자음이 난무하는 음악 시장에서 그들만의 소박한 악기(통기타, 퍼커션, 건반, 콘트라 베이스)로 부지런히 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생생한 삶의 현장인 거리로 나왔다. 홍대 전역을 누비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다 찾아갔다. 양쪽 어깨에 메고도 모자란 악기를 손에 들었다. 물주가 없어도 행복했다. “늦은 밤에 거리 공연을 하면 취객도 상대하고, ‘닭살’ 커플도 보고, 아이들도 만나요. 우리 음악을 듣고 덩실덩실 춤추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은 정말 감동이죠. 그 생생함은 연출할 수 없을 걸요. 아, 가끔 기타 가방에 돈도 많이 넣어주시고요.” (아름) 2009년 12월 18일, 거리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줬던 곡들을 모아서 출사표를 던졌다. 그것이 첫 번째 싱글 앨범 ‘아서라 이그 인트로듀스(ASRA IG INTRODUCE)’다. “앨범 내면서 왜 에피소드가 없겠어요. (웃음) 제가 가장 아끼던 79년생 팬더 기타를 팔았죠. 흐흐” (호석)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막내가 나섰다. “자, 정리를 해보자고요. 우린 ‘아서라 이그표’ 음악을 너무 사랑하니까 모인 거 맞죠?” 남자 셋, 일동 끄덕끄덕. ‘아서라 이그표’ 음악이 뭔데요’ 물으니 이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바로 ‘따로국밥’. 침묵을 지키던 강병훈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밥과 국을 서로 다른 그릇에 담는 게 ‘따로국밥’이잖아요. 같이 먹으면 맛있고요. 우리 넷이 다루는 악기도, 개성도 모두 다른데, 잘 어우러져야 좋은 곡이 나오거든요. 어떻게 섞느냐가 관건이에요.” (일동 웃음) 벽에 덩그러니 액자 하나가 걸려있다. ‘사업자 등록증’이란 글귀에 눈길이 갔다. ‘사업도 하시냐’는 질문에 ‘사장님’이 된 이호석씨가 말문을 열었다. “레이블(음반회사)을 만들었어요. 군악대 시절에 한 달 동안 독일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 열 두 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해야 하는 ‘빡센(?)’일정이었죠. 문득,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렸던 한적한 시골길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시골길 무지끄’란 이름을 지었죠. ‘자연과 함께하는 어쿠스틱 레이블’이란 귀여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용돈 벌다 엉덩이가 빨갛게 물집…딱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제 나이 서른 넘어서 이런 경험이 없을 수가 있나요? (웃음) 아, 아닌가.” 타이틀 곡 ‘기분 좋은 오늘 난’을 소개하던 이호석씨의 얼굴에 잠깐 그늘이 졌다. “가사를 잘 들어보시면 사실은 ‘기분 안 좋은 난’이에요. 가끔 그렇잖아요. 헤어진 애인과 같이 들었던 음악이나 함께 갔던 장소에 가게되면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나잖아요. 그런 상황을 표현한 거예요.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항상 탔던 버스에/이젠 나 홀로 앉아/너와 듣던/그 노랠 불러’ 후렴에는 조금 슬픈 내용을 담고 있죠.” (호석) 갑자기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부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익숙하고, 정들었던 감정을 추스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20여 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엉덩이 화상 입은 얘기도 해야지.” 유쾌한 추억을 용기 있게 고백한 건 아름씨였다. “음악에 집중해보자고 연습만 했는데, 용돈이 부족해서 고민하던 차에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어요. 모 방송국에서 방영할 소지섭씨 주연의 드라마에요. 촬영에 나갔는데, 깊은 산골이라서 너무 추웠어요. 군복 입고, 군화 신고 하루 종일 촬영을 했죠. 그래도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튿 날엔 그냥 촬영장에 가면 안 되겠다 싶었죠. 군대 간 동생이 두고 간 군용 손난로를 양쪽 허벅지와 엉덩이에 두 개씩 넣고 촬영장으로 갔어요. 촬영 내내, 피부가 따끔따끔 하더라고요. 그래도 따뜻하니까 참았죠. 집에 와서 바지를 벗었는데, 허벅지와 엉덩이에 빨갛게 물집이 잡혔더라고요. 어머니가 ‘먹고 살기 참 힘들다면서 그렇게까지 해서 음악을 해야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한 마디 더 거든다. “그래도 혹시 알아요. 제가 배우로 진출하게 될지….”(아름) 이호석씨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항상 변화하는 음악 들려 드릴 거예요. ‘아서라 이그’는 카멜레온 같은 팀이니까요. 소박한 바람은 전 국민이 딱 한번만 인디음악을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인디음악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입술을 앙다문다.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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