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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31 20:20 수정 : 2010.06.01 15:10

탕평채. 예종석 제공

[매거진 esc] 예종석의 신도문대작





세상의 어느 음식이 탕평채만큼 멋들어진 이름을 가졌을까. <송남잡식>은 “청포에다 우저육(牛猪肉)을 섞은 골동채를 탕평채라 한다”고 했고 <동국세시기>는 잘게 썬 청포묵에다 돼지고기와 미나리, 김을 섞고 초장으로 무친 봄철 음식이라고 비교적 상세하게 탕평채를 기록하고 있다. 한낱 묵 요리가 탕평채 같은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사색당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된다.

조선 중기 영조는 붕당 간의 첨예한 대립과 정쟁을 해소하기 위해 인재를 고루 평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는데, 그 무렵 어느 날, 음식상에 나온 묵청포의 갖은 재료들이 섞여진 모양새가 탕평을 상징한다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탕평은 <서경>에 나오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 무당무편 왕도평평(無黨無偏 王道平平)’이라는 글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싸움이나 시비, 논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을 뜻한다고 한다. 영조는 사람을 쓰는 데서도 상호 견제가 가능한 자리에 각각 다른 당파의 인물을 배치하는 쌍거호대(雙擧互對)의 방식을 취했고 후에는 아예 당색은 불문에 부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유재시용(惟才是用)의 원칙을 지켰다. 영조는 사색당쟁의 여파로 자신의 아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사도세자이다. 일설에는 탕평채라는 이름을 영조의 문신으로 탕평론을 주장했던 송인명이 명명한 것이라고도 하고, 다른 기록에는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은 정조가 붙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튼 그 명칭이 그 시절의 탕평책에서 비롯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

탕평채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한다는데,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청포묵의 흰색은 서인을, 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다른 색깔과 맛을 지닌 재료들이 한데 섞여 조화로운 맛을 이뤄내는 탕평채는 진정한 화합정치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탕평채는 고결한 뜻도 지녔지만 보기도 좋고 매끈한 감촉과 맛도 뛰어나며 영양에서도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물론 비타민과 무기질까지 고르게 섭취할 수 있는 훌륭한 찬품이다.

탕평채가 나온 지 3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불화가 곳곳에서 넘쳐난다. 탕평채를 더 많이 먹어야 하는 걸까. 요즈음 웬만한 한정식 상에는 대개 탕평채가 오를 정도로 흔하게 먹는 요리가 되었지만 올봄에는 집에서 옛날식으로 직접 해먹으면서 그 뜻을 기리고, 가정의 화목과 세상의 화해를 기원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시의전서>는 탕평채의 조리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묵은 가늘게 치고 숙주, 미나리는 데쳐서 잘라 양념하여 같이 무치며 정육은 다져서 볶고, 김은 부숴 넣는다. 고춧가루와 기름, 초, 깨소금을 합하여 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묵과 한데 무쳐 담는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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