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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어, 수라상에 오르던 시절이 그립구나. 예종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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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예종석의 신도문대작
생각해보면 웅어만큼 팔자가 기구한 생선도 없다. 조선 시대에는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귀한 신분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에 그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형편이 되었으니 말이다.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웅어는 양식이 힘든 회유성 물고기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에서 많이 잡히는데 늦은 봄에 그 맛이 절정에 달한다. 바다에서 살다가 음력 4월 무렵 강으로 올라와 갈대밭에 산란하고 그곳에 한동안 머무르기 때문에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라고도 하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우어, 우여 또는 웅에라고도 부른다. 자산어보는 웅어를 드문 글자인 ‘웅어 도’ 자를 써서 ‘도어’라고도 기록하고 있는데 실제의 모습도 가늘고 길게 생긴데다 빛깔까지 은백색이어서 칼과 흡사하게 생겼다. 본초강목은 웅어를 제어, 열어, 멸도 등으로 기록하고 있고 다른 문헌에는 망어(望魚) 등의 호칭도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의 음식 관련 업무를 맡아보던 사옹원(司饔院)의 분장(分掌)으로 위어소(葦漁所)를 고양에 설치하여 임금이 드실 웅어를 전담해서 잡았을 정도로 성가가 높은 생선이었다. 일찍이 정약전도 웅어의 맛을 “극히 감미로워서 횟감으로는 상등품”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지만 이즈음에 나는 웅어는 살에 기름이 올라 엇구수하면서도 들부드레한 것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맛이 난다. 웅어는 회로 먹어도 맛이 좋지만 구이나 매운탕, 회덮밥을 해먹어도 맛이 뛰어나며 완자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웅어젓갈은 옛날 궁궐에서도 필히 담가 먹었을 정도로 맛이 별스럽게 좋다. 월탄 박종화도 “5월 단오 때, 행주강으로 나가서 행주산성을 바라보면서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선유를 하면서 웅어회를 먹는 맛은 기막히게 좋다. 웅어는 회로만 먹을 것이 아니라 칼날같이 푸르고 흰 웅어를 두름으로 낚아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 후에 주부한테 주어 난도질을 쳐서 동글동글 단자를 만든 후에 고추장을 물에 타서 끓여 놓고 상추쌈을 해서 먹으면 천하일품의 진미”라고 극찬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행주에서 웅어가 잡히지 않는다. 1980년대에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신곡수중보로 인해 물길이 막혔고, 강변의 개발로 웅어의 산란 장소인 갈대숲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정은 지방의 웅어 산지였던 금강 하구의 강경포구나 영산강 하구의 구진포도 비슷하다. 1980~1990년대에 만들어진 하굿둑이 물의 교류를 막아 둑 안에 갇힌 물이 민물로 바뀌면서 웅어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예로부터 웅어는 임금이 사는 곳을 그리워한다는 전설이 있지만 요즘의 웅어는 수라상에 오르던 옛 시절을 더욱 그리워할 것 같다. 지금도 고양에 있는 자유로민물장어(031-971-0418)에 가면 비록 해남에서 잡아온 것이긴 하나 웅어를 맛볼 수는 있다. 그러나 옛날 행주나루에서 즐기던 풍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양대 경영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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