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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꿈꿨지만, 삶은 추상화일 수 없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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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⑤
‘플랜더스의 개’ 주인공 소년처럼 가난으로 붓을 놔야하는 현실이 술 마시게, 절망하게 했습니다. 그걸 ‘문학의 끼’로 본 선배들이 저를 문학 서클로 불러들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시인이 되었어요?”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길을 잘못 들어서 시인이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웃습니다. 저는 어릴 때 나중에 크면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도화지가 부족하면 신문지에다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나 중학교 때는 만화에 폭 빠져 있던 때이기도 해서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제가 그린 만화를 동네 애들이 5원이나 10원을 주고 사가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은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셔서 미술시간에는 늘 웃음이 넘쳐났으며, 실력도 좋아 아이들이 잘 따랐습니다. 수업 중에 설명을 하시면서 힘들이지 않고 칠판에 슥슥 그림을 그리셨는데 분필이 만들어내는 형상들에 감탄하며 공책에 따라 그리곤 했습니다. 방학 숙제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오는 숙제를 내주신 적이 있었는데 외사촌 형들이 사용하고 쌓아둔 미술교과서나 잡지 같은 데서 그림을 모아 스크랩을 하면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매료되기도 했습니다. 모네의 <수련>, 고갱의 <타히티 여인들>, 고흐의 <자화상>이나 <해바라기> 그림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이 주는 묵직한 사실주의 그림의 무게나 자코메티의 조각이 주는 가늘고 긴 인체로 형상화한 독특한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고갱의 그림이 주는 원색의 강렬함과 원시성에 더 끌리곤 했습니다. 황토색이나 붉고 노란 원색으로 처리한 타히티 여인들의 그림을 그대로 모방하여 그려보기도 하고, 미술 선생님께 배운 대로 화학염료를 사용하여 유리판을 얇게 파 나가며 그 선들 위에 채색을 입힌 타히티 여인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김홍도의 <맹호도>를 유리판에 새겨 보기도 했습니다. 귀를 자른 채 얼굴 한쪽을 흰 붕대로 싸매고 있는 고흐의 눈빛과 자화상의 바탕이 된 붉은색은 강렬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미술선생님이 한번은 수업중에 인상주의 선구자인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이란 작품을 출품했다가 낙선한 적이 있는데 그 작품들로 낙선자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낙선자 전시회라는 이름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기존의 체제나 구조에 편입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지켜나가는 배짱이나 불온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사적, 신화적 배경이 없는 인물 그림을 그리거나 데생이나 색채나 원근, 명암 같은 기본을 지키지 않고 미완성 초벌 그림처럼 희미한 순간의 인상만을 그려 놓았다고 조롱당하고 멸시를 받았음에도 그 경멸의 언어를 기꺼이 자기들의 이름으로 삼은 인상파 화가들의 자세가 멋있어 보였습니다.겨울에는 미술 시간에 그린 성탄절 카드와 연하장을 모아 문화원 전시관에서 바자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이지만 선생님들과 어른들이 많이 사 주셨습니다. 대개 카드 한 장에 오백원에 사 주셨는데 제 그림만은 삼천원에 팔렸다고 미술선생님이 좋아하셨습니다. 그때는 성탄절이나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큰 인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때부터 해마다 12월이 되면 저는 직접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서 친구나 어른들께 보내곤 했습니다. 녹색의 색지에 한 척의 정박한 거룻배나 장승의 토속적인 아름다움, 겹쳐지며 뻗어나가는 산의 능선과 그 위를 나는 몇마리의 학을 채색으로 그려 흰 카드지에 붙이면 예쁜 카드가 되었습니다. 도시락 곽을 만드는 얇은 직사각형의 나뭇조각을 불에 달군 쇠로 지져 다양한 모양을 만든 다음에 그걸 붙이고 간단한 삽화를 곁들여 새로운 연하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작은 소품들이지만 정성을 들여 직접 만든 작품들이라서 받는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 중의 한 점은 원주시와 자매결연한 미국의 어느 도시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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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꿈꿨지만, 삶은 추상화일 수 없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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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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