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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15 17:54 수정 : 2010.10.15 18:01

시 몇줄이 엄마 잃은 두 아이 아빠도 빼앗았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16)

언제나 먼저 지는 꽃과
씨앗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떠나고 가을에 쓴 시가
‘불온 죄’를 뒤집어써
옥천 시골로 내쫓겼습니다
노모께 맡긴 아이들 걱정과
참을 수 없는 그들의 비인간적 처사에
미치치 않으려 시에 매달렸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묵묵히 뚫고 나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주저앉아 있지 말고, 급하게 달려 나가지도 말고, 말없이 고통의 가운데를 걸어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아픔에 정직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픔에 정직한 뒤, 남의 아픔, 우리 모두가 겪는 아픔에도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픔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이라고 과장하지 말고, 이 세상 사람들도 저마다 남모르는 아픔 하나씩, 고통 하나씩 지니고 산다는 걸 잊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가를 배우며 성가의 구절 때문에 울었고, 미사 시간에 성당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고통받는 모습 속에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려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도 제게 아프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제 살아온 반생의 언덕을 제 손으로 갈아엎게 하시고/ 잘못 디딘 발자국도 제 손으로 지우게 하시고/ 굵게 굵게 흘리는 눈물 발등에 넘칠 때/ 빗줄기를 먼저 보내 조용히 씻게 하시고야/ 보리밭 위로 조금씩 햇살 던지시며 제게” (졸시 <적하리의 봄> 중에서) 오셨습니다. 오셔서는 제게 좀더 가까이 오라 하셨습니다.

눈물은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놓고 보면 세상에 의미 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고통 속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 그걸 찾고자 했습니다. 하느님은 저를 슬픔 속에 놓아두고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흘리는 눈물이 어디쯤서 그칠 것인지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눈물로 속살을 정결히 씻고 어디서부터 멈추어 선 걸음을 다시 떼어가야 하는지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멀리서 내려 보고 계시지만 제가 당신의 뜻 안에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다 배우지 못한 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한쪽 팔을 잃고 고통에 소리칠 때/ 우리의 마음 절망으로 꺾이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사랑을 잃고 가슴을 찢겨 울 때/ 우리의 가슴 나약함으로 덮이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입술을 깨물 때/ 자유와 정의를 향한 뜨거움 식어가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가난과 굶주림에 쓰라려 넘어질 때/ 평등과 평화를 이루려는 믿음 작아지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다른 또 한 팔로 상처를 감싸며/ 두 무릎이 남았음을 알게 하소서”(졸시 <저녁기도> 중에서)

가을에 지는 꽃잎을 보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졸시 <꽃씨를 거두며> 전문

언제나 먼저 지는 꽃들이 있는 거지요. 먼저 지는 꽃들을 보며 뒤를 따라 지는 꽃이 있는 거지요. 아직 남아서 그 꽃들을 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생각을 했고,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여름에 세상을 뜬 뒤 가을에 쓴 시들을 모아 겨울에 동인지 <분단시대> 판화시집에 다섯 편의 시를 실었습니다. 동인지가 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 교육청 장학사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장학사는 동인지에 실린 시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저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발표한 시는 <접시꽃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당신의 무덤가에> 이렇게 다섯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장학사는 <접시꽃당신> 중에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나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이런 구절에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을 그어 놓고 있었습니다. <암병동>에는 많은 곳에 붉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로 시작하는 첫 행부터 “참답게 산다는 것은/ 참답게 싸운다는 것/ 싸운다는 것은 지킨다는 것/ 빼앗기지 않고 되찾겠다는 것/ 생명과 양심과 믿음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고/ 정의와 자유와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니” 이런 구절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밑줄 그은 구절들을 거론하며 그 구절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질문 하나 하나는 조서가 되어 기록되었고 저는 진술서를 써야 했습니다.

시인이 이런 시를 왜 못 쓰느냐, 아내를 잃고 쓴 시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 하고 항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학사는 판화시집 자체가 문제라고도 했고 삽화로 실려 있는 판화가 불온하다고도 했습니다. 동인활동 하는 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습니다. 첫 시집을 낸 뒤부터 경찰이 교육청에 찾아와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시구절을 거론하며 ‘교사가 이런 시를 써도 되냐?’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학교로 경찰이 찾아와 교장실에서 교장과 이야기를 하고 가는 날도 있었고, 문학지나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미리 교육청에 제출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발표하기 전에 미리 교육청에 작품을 보내야 하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받고 달포 정도 지난 뒤 저는 옥천군 동이면에 있는 동이중학교로 좌천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없어진 그 학교는 거리가 멀어 집에서 통근을 할 수가 없어 하숙을 해야 했습니다. 당장 어린 두 남매가 걱정이었습니다. 아직 갓난아이인데 엄마 없는 아이들에게 그나마 아빠도 곁에서 돌볼 수 없게 만드는 교육청의 처사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참 힘든 때였지만 건강도 좋지 않았고, 가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렵기 그지없는 상황인 걸 알면서, 좌천을 시켜 시골로 내쫓는 비인간적인 처사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시를 쓰고, 시인으로 활동하는 것을 문제 삼아 불이익을 주는 부당한 명령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영암산 골이 깊어 바람이 길다
시를 쓰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에 태어나
몇 편 시에 생애를 걸고 옮겨 딛는 걸음이 무겁다
새해엔 또 어디로 쫓기어 갈 것인가
아직 돌도 안 지난 아이를 노모께 맡기고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큰애가 문에 서서
빨리 다녀오라고 민들레처럼 손을 흔들 때
자주 오지 못하리란 말일랑 차마 못하고
손을 마주 흔들다 돌아서며
아내여, 당신을 생각했다
이 싸움은 죽어서도 끝날 수 없는 싸움임을 생각했다
세상을 옮겨간 당신까지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하는 싸움임을 생각했다
슬픔보다는 비장함이어야 한다
이 땅 어느 그늘 들풀 크는 곳이면 내 못 갈 곳 없지만
에미 잃고 애비와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당신께라도 다시 보살펴 달라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 이 미어짐을 당신도 헤아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길을 가야 한다
봄이면 할미꽃 제비꽃 다시 피는 이 나라
죽음도 삶도 모두 한세상 이루어
우리도 무성히 되살아나며 이 길을 가야 한다.

- 졸시 <옥천에 와서> 전문

쫓겨 간 곳에서 내가 미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시에라도 매달리는 길이었습니다. 책상 하나에 이불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하숙방에서 밤마다 시에 매달렸습니다. 시집 <접시꽃당신>에 실려 있는 많은 시들은 옥천에서 쓴 시들입니다.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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