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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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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25)
기자회견·인사말 한 게 죄라니법정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대법원 선고 벌금 30만원…
그 정도 죄로 감옥살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투옥 기록은
오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피고는 1989년 5월 14일 청주시 사창동 소재 푸른교회에서 교직원 70여명이 모여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결성 발기인대회에 참가하여 박수로써 지부장을 선출하는 등 노동운동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재판이 열리던 날 법정에서 검사는 그렇게 물었습니다. 긴장하고 앉아 있던 나는 “네, 박수를 치는 등 집단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피고는 같은 달 21일 19시경 청주시 우암동 소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북지부 사무실에서 김병우 등 4명의 교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여 노동운동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검사는 준엄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습니다. “네, 기자회견 같은 집단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피고는 같은 달 22일 19시 30분 청주시 봉명동 소재 봉명교회에서 청주청원지역 교직원 40명과 재야인사 10명이 모여서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청주청원지회 결성대회에 참가하여 인사말을 하는 등 노동운동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검사는 다시 또 물었습니다. 저는 검사의 말을 받아 “네, 인사말을 하는 등 집단행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제 대답을 듣고 있던 법정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고 한마디씩 거드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구속까지 시킨 것치고는 법정에서 죄라고 추궁하는 것이 너무 어이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수를 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인사말을 하는 집단행위를 해서 지금 구속이 되고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제 입장을 진술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해 제가 이 일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교과서 역시 그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과 군부독재의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진실을 왜곡 은폐하거나 불의와 거짓을 미화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고쳐 본 적이 없고 바르게 가르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친일을 한 문인, 지식인에 대해 사실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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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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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무것도 눈뜨지 않은 고요한 새벽입니다.
저도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을 오래도록 꿈꾸어 왔습니다.
첫닭이 울고 새들이 때 묻지 않은 울음을
하늘 한쪽에 축복처럼 뿌리며
우리들의 영혼이 먼저 깨어
어지러운 꿈을 차곡차곡 개어 두고
세상 욕심도 눈뜨지 아니하여
순결한 기도가 숨결처럼 몸에 스미는
그런 아침 같은 세상을 꿈꾸어 왔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빼앗기고 짓밟히고 몸을 묶이어
세상 한 귀퉁이를 잘라 지은 감옥에 갇히어도
용서가 받아들여지고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모두들 제 욕심에 불타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저는 이 험한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피 터지게 소리치고 목숨에 불을 뿌려도
자기 자신을 향해서 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
울음과 웃음을 꾸밈없이 나누는 세상을 그리며
길고도 오랜 세월의 한 중간쯤에
지금은 잠시 감옥에 있습니다.
- 졸시 <눈뜨는 새벽> 전문 결국 1심에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에서 항소를 하여,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 최종심에서는 벌금 30만원 형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결국 벌금 30만원 정도의 죄인데 구속되고 감옥살이를 했던 것입니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도 그 정도는 배상합니다. 지은 죄에 비해 과한 법적 처분을 했을 경우는 국가에서 그만큼 배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재판을 받을 때 저는 배상금을 국가에서 돌려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판사는 “피고는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판시하고는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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