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있으며 ‘동중정’…절제하고 생략해 ‘단시’를 썼습니다
싸움을 포기했다는 오해와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랬습니다. 느슨하고 빈약했습니다. 하지만,
꽃이 흔들리며 젖으며 피듯, 문학도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식투쟁의 후유증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이 마치 제게는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해 야전병원에 후송되어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직 이후 사실 전쟁 같은 나날을 보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처럼 이대로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짧은 시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세상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 끝없이 말을 쏟아내는 시를 써 왔는데, 말을 좀 줄이고 시의 어깨 위에 얹었던 무게도 조금 내려주고 시를 써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투’, ‘연좌’, ‘투쟁’, ‘싸움’ 이런 내용을 담은 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시,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시 말고,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절제하고 생략해서 표현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지훈의 <고사(古寺)1> 같은 시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목어를 두드리다 / 졸음에 겨워 // 고오운 상좌 아이도 / 잠이 들었다 // 부처님은 말이 없이 / 웃으시는데 // 서역 만리 길 // 눈부신 노을 아래 / 모란이 진다” (조지훈의 <고사1> 전문)
이 시는 목어를 두드리다 잠이 든 상좌 아이의 무구한 낮잠과 서쪽으로 지는 모란꽃,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부처님의 웃음이 함께 있는 시입니다. 천지 만물을 숨죽이게 하는 눈부신 고요, 동중정(動中靜)의 한 순간입니다. 저도 순간순간 동중정의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거친 싸움 속에서도 시심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몸 때문에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 여섯 달 동안 집중적으로 단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걸 모아 1994년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출간을 했습니다. 출간한 다음날 바로 반응이 날아왔습니다. <한겨레신문>이었습니다. 최 아무개 기자의 기사는 ‘발전인가 퇴보인가’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도씨의 새로운 시들은 싸움의 현실을 일단 벗어나 관조와 침잠의 절간으로 자리를 옮긴 듯한 느낌을 준다. 현실의 구체성과 치열한 역사의식이 내놓은 자리를 인생과 우주의 운행에 도통한 듯한 달관의 자세와 때로 작위성이 엿보이는 소월풍의 가락이 차고 들어가 있다”고 정리하면서 시들이 “전통적인 만큼 상투성의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예로 든 시가 시집 맨 앞에 있는 <산사문답>이란 시였습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비 그치면 / 또 어디로 가시려나 // 대답 없이 바라보는 서쪽 하늘로 / 모란이 툭 소리 없이 지는데 // 산길 이백 리 / 첩첩 안개 구름에 가려 있고 // 어느 골짝에서 올라오는 목탁소리인고 / 추녀 밑에 빗물 듣는 소리” (졸시 <산사문답> 전문)
시 속의 화자는 비가 그치면 또 떠나야 합니다. 지금은 비 때문에 잠시 추녀 밑에 앉아 있지만 곧 산길 이백 리를 넘어야 합니다. 그 길 지금은 안개 구름에 첩첩 가려 있습니다. 잠시 머물고 있는 사이에 모란은 지고 추녀 밑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가 목탁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지는 꽃도 우리도 결국 서역으로 가는 것인데 아직 살아 있어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제 처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쪽이나 모란이 지는 것이나 불교적 서정이 조지훈의 <고사1>과 흡사합니다. 조지훈의 이런 시를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병 때문에 주어진 휴식의 시간에 그려본 풍경화를 보고 “싸움의 현실을 벗어나 관조와 침잠의 절간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걱정하면서 “현실의 구체성과 치열한 역사의식”이 사라진 쪽으로 완전히 시의 방향을 튼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서 “소월풍에 해당하는 시들만으로 꾸며진 새 시집에서 시인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기다림, 심지어는 싸움과 죽음까지도 관용과 달관의 넉넉한 품 안에 모두 감싸 안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이 구체적인 삶에 밀착할 때는 살아 있는 교훈을 낳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이 현실에서 동떨어질 때는 막연한 추상화로 향하거나 불필요하고 몰역사적인 자책의 포즈를 내비치게 된다”고 평가한 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발전적인 가벼움일까, 아니면 퇴행적인 경박함일까” 하고 끝을 맺습니다.
수사적 질문으로 마무리된 이 기사를 다 읽고 나면 ‘발전적인 변화라고 해 봐야 가벼워진 것이고, 결국 퇴행적인 경박함으로 떨어지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실천문학사에서 청소년용으로 기획한 <선생님과 함께 읽는 김소월>에 소월시의 감상과 해설을 부탁받고 책 뒤에 쓴 글 때문입니다. 해설을 쓰면서 제가 <귀뚜라미>란 시를 예로 들며 소월한테서 배워야 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
“산바람 소리 / 찬비 듣는 소리 / 그대가 세상 고락 말하는 날 밤에, / 숫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김소월 <귀뚜라미> 전문)
이게 이 시의 전문인데요, 이 시를 보면 화자는 세상 고락에 대해 말하는 벗과 앉아 밤을 새웁니다. 숫막집에 불이 질 때까지 밤 깊도록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창밖으로 지나가는 산바람 소리, 귀뚜라미 소리를 듣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도피해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사회현실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 방식으로 시를 쓰던 당시의 우리 시가 이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 고락 속에서 시가 나오지만 세상 고락에 매몰되지 않고, 동시에 세상 고락을 외면하지 않는 이런 태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월은 시란 인간의 삶에 대한 정서적 접근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이 시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기사는 ‘소월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고 썼습니다. 저는 소월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소월의 시에서 다시 시작하고 배워야 변증법적인 질적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안 형태의 논문이 아니라 소월시집 해설이라는 성격의 글이었습니다.
배우자는 것이나 돌아가자는 것이나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신문 기사를 읽은 동료 문인들 중에 제가 싸움을 포기하고 역사의식도 내려놓고 소월로 돌아가자는 방향전환을 한 것처럼 생각하며 분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훼절(?)을 소재로 해서 제 문학적 처신을 질타하는 시가 문예지에 발표된 걸 보기도 했습니다.
좀 쉬어 가자는 제 생각이 너무 안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시를 쓰려면 적어도 박용래의 <저녁눈> 같은 시, 김종삼의 <묵화> 같은 시는 썼어야 합니다. 병상에서 쓴 단시니까 다 용서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아전인수식 생각입니다. 조지훈의 단시, 김소월의 단시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고 제가 쓴 시가 다 용서되는 것도 아닙니다. 느슨했고, 긴장감도 떨어졌고, 내용도 빈약했고, 치열성은 식었다면 반성해야 마땅합니다. 그때도 반성했고 지금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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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졸시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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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도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에 실려 있는 시입니다. 이 시를 보고 난 평론가 김상욱 교수는 웃으며 “형, 이거 함량 미달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량 미달이지요. 그러나 함량 꽉 찬 시를 못 써서가 아니라, 어떤 때는 함량이 조금 미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 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시를 너무 내 필요한 곳으로, 행사장으로, 싸움의 한복판으로 끌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습니까. 흔들리다가는 제 자리로 돌아오는 거지요. 제 자리로 돌아와서 꽃을 피우는 거지요. 그러나 꽃을 피우고 나서도 또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꽃만 그럴까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젖으며 젖으며 따뜻한 빛깔의 꽃을 피우는 거지요. 그러나 늘 젖어 있기만 한 꽃은 없는 거지요. 문학도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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