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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5 19:48 수정 : 2011.02.25 19:48

1996년 12월26일 새벽 6시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민주노총은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수배가 된 저는 함께 농성을 했습니다
노동자 투쟁이 범국민운동이 되고
오만한 권력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34

1996년 12월26일 새벽 6시 김영삼 정부와 신한국당은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기습적으로 날치기 처리하였습니다. 성탄 캐럴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 새벽, 거룩한 밤을 찬미하는 기도와 성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은 복수노조 전면 유예와 쟁의기간 임금지급 금지 등의 단결권이나 단체행동권을 심각히 제약하는 것과 정리해고 도입, 변형근로제 도입 같은 독소조항으로 가득했습니다. 또 안기부법은 국가보안법상의 고무 찬양죄와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까지 부여하고 있는 반민주적인 악법이었습니다.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전체 민중운동 진영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 시내 각 호텔에 분산해 있다가 새벽에 동원된 154명의 의원들(156명 중에 김윤환 의원은 외유중, 이신범 의원은 지각)은 “표결을 시작하겠다”는 구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총 11번을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11건의 노동법, 안기부 관련법을 처리했습니다. 시간은 6분 10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6분 10초면 라면 한 그릇을 끓이기에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8개월을 끌어온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입니다. 날치기를 끝낸 일부 의원들은 여의도의 식당으로 몰려가 축배를 들었고, 법안 처리 소식을 들은 대통령은 청남대로 휴가를 내려왔습니다. 민주노총은 바로 노동법 개악저지 총파업투쟁을 선언하였고, 시민단체와 야당은 장외투쟁에 나섰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가 끝난 걸 보고 청남대 별장으로 휴가를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청남대로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법이 발효되기 전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청댐 안쪽에 있는 청남대는 청주 시내에서 30분 거리에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대책위는 가다가 문의로 들어가는 삼거리에서 경찰에 막혀 몸싸움을 했고 일부는 경찰에 연행이 되었습니다. 김인국 신부와 시내로 돌아오다가 수배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와대의 지시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도망을 쳐야 했는데 연말에서 신정으로 이어지는 시기라 여관을 전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월1일 아침에는 문을 연 식당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청주로 내려와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울에서는 총파업 지도부가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본부를 차렸는데, 우리 지역도 내덕동 성당에 천막을 치고 민주노총충북본부 배창호 의장, 김재수 사무처장 등 총파업 지도부를 그리로 옮겼습니다. 신순근 신부님이 성당 한쪽에 천막을 치게 양해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어떤 날은 살을 얼리는 바람이 밤새 천막을 가린 비닐을 흔들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진종일 몰아쳤습니다. 한겨울에 천막 날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고 나면 얼굴이 부석부석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마에 머리띠를 묶으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경찰이 제게 보내는 출두요구서는 파업투쟁이 끝날 때까지 여덟번이나 날아왔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경찰들도 제가 낮에는 노동자들의 한가운데 있고 밤이면 성당 천막에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체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항상 노동자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경찰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판단을 저울질하고 있었을 겁니다.

거의 매일 거리에서 노동법 날치기 통과 규탄과 총파업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들부터 시작하여 병원 노동자, 언론 노동자, 교사들이 차례차례 가세하면서 시위 대열은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안기부 건물 앞까지 몰려가 바리케이드 앞에서 투석 시위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1월 중순께에는 학생들과 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참여하였습니다. 곽동철 신부님을 비롯한 신부님들은 기도회를 열었고, 대학교수들은 항의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교육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거리에서 서명 받는 것도 겸연쩍고 불편했습니다. 항의방문을 다니며 정당의 당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도 어색했고, 대중 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연일 계속되는 집회를 이끌면서 매일 거리에서 대중 연설을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날치기면 노동자는 박치기다” “총파업투쟁 동참하여 아내에게 사랑받자” “나는 03당이 싫어요” 이런 구호들이 터져 나와 힘든 시위에 웃음과 힘을 주는 날이 많았습니다. 2단계 총파업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연대하면서 전국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75만명이 참가한 총파업이 전개되기도 하였습니다.

강경 방침을 유지하던 김영삼 정부도 결국 개정 노동법안이 시행되는 3월1일 이전에 국회에서 재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1월23일 한보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나 노동운동이 경제를 침체시키는 요인이라고 강변해 왔는데 정부와 부패한 재벌이야말로 국가경제를 망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연이어 김영삼 대통령 아들의 비리가 함께 딸려 나왔고, 신한국당과 김영삼 정권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되어 2월 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원하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날치기 통과된 법들을 재개정하고 오만한 권력을 국민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3월 초 여야가 다시 논의한 노동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2월 하순, 저는 충북민예총과 함께 그동안의 싸움을 집체극을 통해 마무리하는 <악법철폐 위해 싸우는 노동자가 자랑스러워요>라는 제목의 문화공연을 열었습니다. 제가 대본 초안을 쓰고 박종관(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 연출을 하였습니다. 그 공연에서 저는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라는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세기말의 우울한 나팔소리 저녁하늘에 번져갈 때도

그들은 나른한 선율에 빠져들지 않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도 서둘러 보따리를 챙기며

이 시대를 파장 분위기로 몰아갈 때도

그들은 노동판을 떠나지 않았다.

변혁의 꺼지지 않는 열망을

노동의 화로에 불씨처럼 묻었다 건네주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나직하게 말해왔다.

새 세상은 미리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고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단결만이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무기라고

싸워서 얻는 것만이 가장 값진 성과물이라고

파업을 준비하며 동료들 손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척박한 천민자본주의 담 밑에

분배의 정의와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뜨거운 소망을,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심었다

그토록 힘겨운 파업투쟁의 대오가 거리거리 넘치고

물결을 이룬 저항의 행렬이 온 나라를 덮었을 때

많은 이들은 이 시대에 노동자가 누구인가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성당 한 모퉁이 쫓기던 이들이 모여 앉은 천막 위로

어떤 날은 살을 얼리는 바람이 밤새 비닐을 흔들고

어떤 날은 눈보라가 진종일 몰아쳐도

눈보라보다 더 큰 함성으로 따뜻할 수 있었다.

천막 날바닥에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나선

얼어붙은 이마에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투쟁으로 해가 뜨고 투쟁으로 별이 빛나는 거리로 몰려나가

마침내 오만한 권력을 무릎 꿇릴 수 있었다

썩을 대로 썩은 재벌과 그 찌꺼기를 나눠 가지며 공생하는

더러운 권력을 향해 가장 앞장서서 싸우며

아직 다 잠들지 않은 양심들을 하나의 깃발 아래

불러 모으는 이들이 누구인지 당신들은 확인할 수 있으리라

노동자는 위대하다

멈추지 않고 깨어 흘러 저 자신을 살리고

온 천지를 살려내는 강줄기처럼 노동자의 물결은 위대하다

이 시대 희망의 날들은 저물었다고 돌아서던 사람들을

보란듯이 질타하는 노동자의 몸짓은 눈물겹다.

이 나라 이 역사에 당당하게 싸워 얻어낸

승리의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살아 움직이며 밀고 가는 노동의 수레바퀴는 힘차다

투쟁으로 밤이 가고 투쟁으로 새벽이 오는 거리에서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 졸시 <노동자 그대의 이름은 아름답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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