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6.03 22:14 수정 : 2011.06.03 22:14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8

“반역의 깃발은 탄압 받아 왔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역사도 없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그러하셨듯 다시 정좌하고 붓을 드는 겁니다”

산방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라디오도 들을 수 없고, 신문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도 물론 연결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산방에서 지내던 기간 중에 국민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이들 중에는 장관이 된 사람도 있고, 국회의원이 되거나, 청와대에 들어가 일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고라니, 다람쥐와 같이 지냈습니다. 함께 민주화운동 한 이들이 붉은 카펫이 깔린 만찬장으로 옮겨 다닐 때 저는 지게 지고 나무하러 다녔습니다. 밤 열시 넘어야 들어오는 심야전기보일러는 자주 고장났고 한겨울에 실내온도는 영상 8도에서 13도까지 오르다가 더 안 올라갈 때가 많았습니다. 수도가 얼어 터져 눈을 녹여 손 씻을 물을 마련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겨울을 힘들게 견디고 봄이 찾아와 진달래 피는 걸 보면 눈물 나곤 했습니다.

몇 해가 지나면서 한-미 에프티에이(FTA)를 한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미군기지가 자기 고향으로 오는 걸 반대하던 친구 정태춘이 두들겨 맞고 끌려가는 걸 보았습니다.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펼침막에 목이 졸려 죽을 뻔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뒤로 그는 노래를 그만두고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라크로 군대를 파병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사안별로 연대하고 힘을 합쳐 쌓여 있는 악법과 제도를 고치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했는데, 보수세력과 대연정 하자고 제안하는 걸 보았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개혁세력이 정권을 맡았던 적이 언제 있었습니까? 개혁권력과 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창의적인 엘리트들이 나라를 맡았던 정조임금이 재위 24년간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국방, 산업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으로 변화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정조임금이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권력은 급속하게 보수 세력에게 넘어갔습니다. 그 뒤로 보수권력은 다시는 개혁적인 인물을 왕의 자리에 앉히지 않았습니다. 왕 수업을 받지 못한 사람, 권력의 네트워크가 가장 취약한 사람 중에 고르고 골라서 왕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강화도에서 농사짓고 있다가 불려온 철종임금 같은 이가 그렇습니다. 그 뒤로 고종, 순종으로 이어지며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해도 집권 보수 세력은 자기 가문, 자기 영토, 자기 세력을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 생각했습니다. 식민지와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언제 개혁세력이 권력을 잡고 나라를 이끌어 간 적이 있었습니까? 지난 십년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잘했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지 말고 다시 신뢰와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고 권력이 넘어가자 세상은 순식간에 맘몬의 시대로 돌아갔습니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놓은 것이 있으니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던 이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정치, 사회, 문화 전 부문에서 후안무치하게 후퇴하였고, 평화를 위한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으며,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처럼 토건 카르텔이 보수의 막강한 정치적 기반이 되는 토대를 마련했고 그 결과 강과 산천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파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강자의 논리가 횡행하는 야만의 시대로 돌아갔습니다.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속물의 정치, 스노보크라시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전직 대통령이 바위 벼랑에서 목숨을 던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노무현을 욕하면서 한발 비켜서서 자신을 변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우리는 그의 좌절이 우리의 좌절, 그의 치욕이 우리의 치욕, 그의 수치가 우리의 수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정일 교수의 말씀대로 민주주의가 이삼십년 만에 완성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전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너무 안이했습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다산 선생은 유배 생활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던 꿈이 좌절되는 게 더 가슴 아팠을 겁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도 다시 아침마다 정좌하고 붓을 들게 하던 힘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요?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의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오래된 실의와 편력과 좌절도 저를 따라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섬돌 옆에 앉았습니다 선생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릉의 나라는 없고 지상의 날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 깊은 병도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걸 압니다 대왕의 붕어(崩御)도 선생님에겐 그런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제 겨우 작은 성 하나 쌓았는데 새로운 공법도 허공에 매달아둔 채 강진으로 오는 동안 가슴 아픈 건 유배가 아니라 좌초하는 꿈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노론은 현실입니다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세월을 먹이겠습니까 하물며 어찌 평등이며 어찌 약분(約分)이겠습니까 그래도 선생님은 다시 붓을 들어 편지를 쓰셨지요 산을 넘어온 바닷바람에 나뭇잎이 몸 씻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이마를 씻으셨지요 현세는 언제나 노론의 목소리로 회귀하곤 했으나 노론과 맞선 날들만이 역사입니다 목민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 시간만이 운동하는 역사입니다 누구도 살아서 완성을 이루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미진선의 길입니다 선생님도 그걸 아셔서 다시 정좌하고 홀로 먹을 갈았을 겁니다 텅텅 비어 버린 꿈의 적소(謫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바람에 눈 녹은 물방울 하나 날아와 눈가에 미끄러집니다

-졸시 <새벽초당>에서


보수가 이 나라 역사의 주류입니다.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의 힘으로 촘촘하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이들이 수없이 반역의 깃발을 들었던 것입니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참혹하게 죽거나 멸문의 화를 입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반역의 깃발과 패배의 정신이 없으면 역사도 없습니다. 반역의 주체는 주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주류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패배의 정신 속에 녹아 있는 가치가 주류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패배의 정신은 불굴의 정신이 되고 불씨가 되어 때가 되면 되살아나는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원하던 것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입니다. “텅텅 비어 버린 꿈의 적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다산 선생이 그러하셨듯 좌초한 그곳에서 찬물에 이마를 씻고 다시 정좌하고 붓을 드는 겁니다. 시인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