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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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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간 학살·원전 방사능 오염 등
이 정도 세상밖에 못만들었지만…”
자연의 회복력·인간의 정신·열정
그것을 믿고 희망을 만들어갑시다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9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요?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가 있는 곳을 하루의 시간에 견주어 본다면 우리는 지금 몇 시쯤을 지나가고 있는 걸까요? 저는 세 시를 넘어 다섯 시를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열두 시 전후한 시간은 치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지쳐 있었으며, 의기소침한 채 오후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저무는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기 전 찬란한 노을이 하늘을 가득 물들이는 황홀한 시간이 한번쯤 오리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계절이 후천개벽이 열리는 가을로 가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일찍 찾아와 북극의 빙하가 녹고 하늘 곳곳이 벌레 먹은 자국처럼 뚫려 바닷가 마을이 물에 잠기고, 대부분의 대지와 숲이 사막으로 변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리석은 인간들이 오만함을 버리지 못해 원전이 터지거나 핵무기를 쏘아 올려 곳곳에서 절멸의 징후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깃들어 살고 있는 이 숲과 자연이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인 구달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숲들이 사라지고, 토지는 침식되고, 수면은 말라가고,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굶주림, 질병, 가난, 무지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함, 탐욕, 질시, 복수, 타락이 있다. 세계의 대도시에는 범죄, 약물, 갱, 폭력이 있고, 수천의 집 없는 사람들은 살림을 유모차, 쇼핑 카트, 또는 등에 지고 다니면서 문 앞이나 창틀에서 잠을 자고, 살아가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수는 늘어만 가고 있다. 종족 갈등, 학살이 일어나고, 평화협정들이 깨어지고 있다. 수백만 명이 총에 의해, 칼에 의해, 지뢰에 의해 죽음을 당하거나 불구가 되고 있다. 또 다른 수백만 명은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 체르노빌 사고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벨라루스는 히로시마의 아흔 배에 달하는 방사선 피해를 입었고, 전체 토지의 1%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남을 수 있었다. (…)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다. 지구라는 우주선의 생명체들이 그러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탄식하면서 제인 구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희망은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꿀 때에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변화는 당신과 내가 가져오는 것이며 변화의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희망의 이유>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지혜, 자연의 회복력, 젊은이들에게서 발견하는 에너지와 열정, 불굴의 인간 정신 네 가지가 끝까지 희망을 갖게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인간이 겨우 이 정도의 세상밖에 만들어 놓지 못했지만, 그래도 희망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 불굴의 인간 정신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우주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자연도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연은, 해와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서 있는 시간이 그런 오후임을 생각하며 이런 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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