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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 갑에게 바치는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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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지인들과 산을 올랐다. 힘겹게 올라가던 그를 향해 지인들이 질문을 던졌다. “왜 등산복을 안 입고 갭(GAP·미국 의류 브랜드)을 입었어?” 그는 웃으면서 한마디한다. “평생 을이었지. 옷이라도 갑(GAP)이었으면 해서.” 모두가 웃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곳곳에 얽혀 있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내가 을인가 싶더니 갑이 되기도 한다. 국면의 전환이다. 후배 케이(K)도 그런 경우다. “이전 연애에서는 늘 진상을 받아주던 을이었지, 지금 너무 좋아.” 배시시 웃는다. 갑의 생활을 하고 있다. 케이는 지금의 남친을 ‘막장’ 생활을 하다가 만났다. 케이가 가입한 사진 동호회의 소모임 이름이 ‘막장’이다. 대부분 20~30대 직장인인 이들은 ‘막장’으로 논다. 일을 끝내고 저녁 8시쯤 모이면 다음날 출근시간까지 밤새 논다. 술보다는 희한한 게임을 한다. ‘타인 웃기기’, ‘몸 개그’ 등이다. 케이는 그들 중에서 우수한 처자다. 좌중을 압도하면서 웃겼다. 인기가 치솟았다. 1년 전 ‘막장’원들은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 바람을 맞으며 남친은 자전거 위에서 을이 되겠다고 고백을 했다. 죽도록 모시고 살겠다고 맹세했다. 을인 남자친구의 노예생활은 케이가 야근일 때 더 빛을 발한다. 남친은 커다란 도시락을 들고 늦은 밤 여친의 회사에 나타난다. 그의 손에는 얇은 피로 고기를 감싸 안은 만두가 들려 있다. 만두라! 맛계에서 만두도 을이다. 중국집의 만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서비스다. 하지만 빠지면 어딘가 심하게 허전하다. 군만두가 없는 팔보채는 생각하기도 싫다. 을이 있어야 세상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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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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