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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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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한 후배는 서른이 되자 자신에게 선물을 했다. ‘기특하다. 폭풍 같은 험한 20대를 잘도 버티고 왔구나’ 하고 말이다. 그 후배처럼 자신을 대상화시키자면 나와 밥을 가장 자주 많이 먹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벌써 밥 먹을 사람 떨어졌구나, 비웃지 마시라, 그저 좀 바빴다!) 몸은 시궁창 물이 배어나오는 빨래통에 던져진 이불처럼 축축 처지고, 우울한 감정은 지하실 바닥을 뚫고도 한참을 더 내려갈 정도로 회색일 때 혼자만의 밥상을 찾아 나선다. ㄷ동에 있는 ㄱ초밥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서 언제나 스산하다. 이곳은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가 구석에 혼자 처박혀 돼지처럼 먹고 있어도 위축되지 않아 좋다. 늘 앉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초밥바의 맨 왼쪽 끝이다. 간간이 오는 나 같은 손님은 요리사 3명 중 막내에게 배정된다.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처럼 생긴 청년이다. 그는 치료사이다. 그의 맛을 느끼고 있노라면 서서히 회색이 분홍빛으로 변해간다. 맛이 휘감아 돌아 내 정신을 빼놓는다. ‘이 지상 최고의 맛’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곳의 최고의 맛은 총주방장이 낼 것이 뻔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나아진 그의 솜씨 때문이다. 자주 가지 않는 통에 혀가 그 변화를 금방 알아챈다. 그의 초밥을 한 알, 두 알 먹다 보면 우울함이 서서히 1층으로 올라와 공기와 섞이는 순간을 맞는다. 맛에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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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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