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관 12회]
“세월도, 강물도, 아버지의 사랑도, 눈물도 흐른다”…두 아들의 독백
[줄거리] 석호와 윤국, 강가에서 두 남자가 심하게 다투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어 화면이 둘로 나뉘면서 둘과의 대화는 점점 더 격렬한 다툼 양상으로 번진다. 석호의 울부짖음, 윤국의 진솔한 사과로 갈등의 폭이 점차 줄어들어 해결의 기미가 보일 때쯤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각자 독백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장소는 같아 보였으나 분명 다른 장소이고 심지어 시대상도 다르다. 두 아들, 혹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첫 대화가 강물과 함께 흐른다.
[연출의도] 아버지와 아들은 특별한 관계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특별한 그 관계를 주관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들과 아버지를 버린 두 아들을 등장시켜 이 시대 아들들을 두 상반된 캐릭터로 묘사했다.
그 둘이 실제로는 대화할 수 없겠지만 영화 내에서는 각자의 서러움과 슬픔을 표출하는 방식이 묘하게 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영화적 장치로 그려내어 영화를 본 관객이 자신의 아버지를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출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린다면 더 좋겠다.
‘흐른다’ 남윤국 감독 서면 인터뷰
독립영화 ‘흐른다’ 남윤국 감독. 인사이드피플 제공
-독특한 구조의 영화입니다. 시나리오 집필과정이 상당히 궁금합니다. 독백식의 대사는 배우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신 건가요? 아니면 철저히 계산된 작업이었나요?
“이 영화는 텍스트 형식의 시나리오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대사 역시 정해진 것이 없이 촬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흐름은 정확히 계산한 것입니다. 대사의 시간배분 역시 정확히 정해진 내에서만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무조건 대사에 포함되어야 할 감정이나 단어를 정해놓고 그것만 대사에 정확히 표현된다면 배우의 자유의지로 연기할 수 있도록 촬영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맞춰 연기해야 했기에 많은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팅 역시 일반적인 대화 신과는 다르게 주문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요?
“두 인물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영화에서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각자의 독백으로 대화가 진행되어야 했기에 대사 속의 단어 선택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주어 선택부터 종결어미의 억양까지 모두 신경 쓰며 촬영을 했습니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따로 연기 디렉팅은 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 ‘송석호’와 함께했기에 그를 믿고 의지했습니다.”
-끝 자막을 보니 직접 출연하셨더군요. 혹시 본인이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영화 내용 자체가 사실을 바탕으로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실제 아주 건강하시지만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사로 표현했습니다. 나중에 영화 속 윤국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아 정신을 차리기 위한 자극제이기도 했습니다.”
-경험상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직접 연기를 할 때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제 경험에 비춰 말씀드리자면 우선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 연출에 신경 써야 할 집중력이 연기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흩어져버립니다. 둘째, 영화에 대해 감독 이상으로 완벽한 이해가 있는 조감독이 있지 않은 한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을 진행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많은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다행히 제 영화에는 그런 조감독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셋째, 연기에 대해 스스로 평가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쉽게 포기해 버리고 타협하는 일이 잦습니다.
장점은 거의 찾을 수가 없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하다 보니 기술적인 연기력, 표현력은 좀 부족하더라도 내재한 감정은 그 어떤 배우가 연기할 때보다 진하게 녹아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두 장면을 나눠서 촬영했는데도 큰 어색함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촬영이나 편집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정확히 시간 계산을 하고 촬영했기 때문에 편집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시간계산 실수를 편집 중에 몇 군데 발견했고 그 때문에 필요 없는 인물표정 인서트 컷을 넣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내용과 부합하는 <흐른다>라는 제목의 시, 공간적 의미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영화연출론 기말고사 마지막 문제 같네요.(웃음)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역시 끝없이 순환하며 흐른다는 것에 시간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고, 물이 흐르는 이미지에 그 의미가 투영되어 공간적 의미를 창조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두 인물의 눈에서, 심장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영상·글 인사이드피플(insidepeople.co.k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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