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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25 10:28 수정 : 2010.12.20 10:35

작은 용기, 당신이 치러야 할 비용

[매거진 esc] 닥터 소의 심심 클리닉
Q 튀지 않고도 부담 없이 존재감 살릴 비법 없나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30살의 직장 여성입니다. 저의 고민은 존재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튀지 않고 무난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생활 속에 반영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연애사나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아서일까요. 평범하게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자주 합니다. 문제는, 이런 삶의 태도 때문인지 저의 개성이나 존재감이 점점 흐려진다는 거예요. 한번은 일이 바빠 회식자리에 참석을 못 했는데도 아무도 저를 찾지 않더군요. 왕따를 당할 만큼 대인관계가 엉망인 것도 아닙니다. 2차에서 합류하겠다고 빠졌는데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언제 오느냐”며 전화해 찾는 이가 없었습니다. ‘일이 있다 했으니 그러는 거겠지’ 하면서도 서운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외모도, 업무 능력도, 성격도 무난한데 뭐 하나 똑 부러지질 않아서인지 ‘니가 아니면 안 돼’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흔하디흔한 이름도 저의 이 평범함에 한몫하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부담스럽지 않는 존재감 찾기가 가능할까요?

A ‘부담 없는 존재감 찾기가 가능할까요?’란 질문에, 먼저 저 또한 이 지면을 맡게 되면서 같은 심정이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심지어 제 글은 이 수많은 기사와 칼럼들 속에서 ‘존재감 제로’인 상태, 허허. ‘이 꼭지가 어떻게 읽혀질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이 고민을 저도 고민하기로 했지요.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은 존재감이 없다는 자기인식이 옳은가 하는 것일 텐데요. 회식건에서 예로 드셨듯이, ‘일이 있다 했으니 그러는 거겠지’와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설명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흔히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의 자기 이미지를 파악할 때,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자신의 관점 혹은 기분에 따라 해석하곤 하지요. 따라서 이때 먼저 선택한 내 자신의 설명 이외에도 다양한 성격과 기분을 지닌 타인들이 했을 다른 설명들 또한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 물론 회식건 하나로 자신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검토가 끝났다면 존재감이 없다는 내 인식이 꽤 타당하다 하더라도 ‘이런 면을 가지고 있는 내가 정말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해봐야겠죠. 평소의 당신은 신중하고 남에게 피해나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분 같습니다. 스스로가 그 반대의 대우를 받기 싫어하는 만큼이나요. 사람들은 주변인에게 영향을 덜 주려 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당신을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몇 안 되는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극적인 말과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행동으로 존재감을 넘어 그 존재 자체가 두려운 사람들도 간혹 주변에 있죠? 그런 분들 덕에 우리는 말씀하신 ‘평범하게 살기도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지금의 내 성격에는 장점도 많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하셨다면, 이제는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이 가벼운 마음이 필요해서 긴 사설을 늘어놓았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튀지 않고 무난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저의 생각이 생활 속에 반영돼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서거나 튀는 걸 싫어하거든요. 성격도 조용하고 차분한 편입니다’라는 당신은 ‘니가 아니면 안 돼,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라는 말에서도 비치듯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바람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이런 바람이 튀지 않으려는 평소 자신의 성격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균형을 맞추고 싶은 이른바, 긍정적인 동기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은 안전하지만 외롭고, 다른 한쪽은 주목받아 뿌듯하지만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요, 부담스럽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는 존재감 찾기란 소망에는 조금의 수정이 있어야겠습니다. 즉 존재감 자체가 부담을 주게 마련이므로,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 극복할 각오가 필요한 것이지요. 여기에는 용기라는 비용이 들 것입니다. 때론 아니다 싶을 때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고, 손해 보기 싫으면 참지 말고 자기주장도 해야겠죠.

그러고 나면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들이 남습니다. 싫은 소리 해서 생긴 미안함, 못된 사람으로 비칠까봐 드는 걱정 등등. 그럼 후속조처가 필요해질 겁니다. 이를 풀어보려고 대화도 나누려 하고 차나 술 한잔 마시려는 어울림도 찾게 될 테고요. 그러는 동안 당신과 이렇게 제대로 기승전결을 겪게 된 상대는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당신에게 할애할 것이고 이에 따라 당신의 존재감은 상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당신이 이런 용기를 낸다고 해서 남에게 해가 될 정도로 악명 높은 존재감을 가질 위험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동료에게 먼저 전화해서 ‘나 혼자 회식도 못 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쩜 언제 오느냐는 전화 한마디가 없어요? 2차 어딘데요?’라고 짐짓 삐친 듯한 말투로 한마디 해줄 수도 있겠죠. 자기들 술잔 기울이는 동안 열심히 일한 당신의 수고도 알고, 동료를 세심히 챙기지 못한 반성들도 하시게요. 그러고는 2차 합류하셔서 쿨하게 어울려주시고요.

닥터 소의 심심 클리닉
이 꼭지를 덜컥 맡겠다고 한 제 결정도 나름 변화에 대한 작은 용기라고 미화해봅니다. 나답지 않은 결정이어서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이죠. 없는 글솜씨에 진료실 상담 습관까지 담아 상당히 고리타분한 글이 될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해보려는 거지요. 뭐, 나답지 않았던 것도 이왕 시작한 이상 결국 나다운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소기윤 정신과 전문의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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