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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회복, 싫어도 대화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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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닥터 소의 심심 클리닉
Q 여자상사의 부당한 대우가 너무 힘들어요
올해 마흔인 외국계 회사 직원입니다. 1~2년 전 입사한 여자 상사(40대 후반 미혼)와의 관계가 사소한 다툼으로 올봄부터 틀어졌습니다. 그가 그 뒤로 외국의 고위 임원들에게 제가 프로페셔널하지 않고 태도도 좋지 않다고 언급한 것을 알게 되면서, 저는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됐습니다. 또 본사에서 우리나라에 새 공장을 지으면서 새로운 책임자 자리가 생겼는데, 그 상사는 내부자 우선 채용이 원칙임에도 이 분야 경력이 풍부한 저를 서류전형에서 탈락시켰습니다. 그 상사에게 지원하겠다고 미리 얘기했더니 “우리 회사에서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그만둬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만일 당신이 최종 후보로 남아도 내가 선택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스타일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제가 이토록 배제될 만큼 잘못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저를 이토록 초라하게 만드는 게 용납되지 않네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자 상사가 처음이었고 이렇게 상사에게 모진 취급 받기도 처음이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요?
A ‘여자’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우선 상사분이 뭔가 우리 주인공께 틀어져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네요. 그래도 상사란 분이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시다니…. 거, 웬만하면 부하직원 맘고생 하는 거 생각하시고 먼저 좀 보듬으시지. 그것도 상사의 능력일 텐데 말이죠. 이렇게 상대가 문제라고 본다면 ‘그 상사 너무하네’란 대답 외엔 딱히 답해드릴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좀더 당연한 소릴 한다면 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 지인들에게 호소해서 같이 흉도 보고 이 문제로 골머리 썩느라 들던 내 아까운 에너지를 나눠서 평소 좋아하는 활동으로 기분도 전환하시라는 말 정도. 하지만 주인공께서 이 지면에 어렵게 고민을 던진 의도가 상대의 잘못을 어떻게 해보려는 것보다 내 문제가 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일 거라고 우기면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대의 잘못이 크다고 해도 이와 상호작용하는 내 요소가 어떤지 아는 것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먼저 질문 제목에서 단서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요. ‘상사와 힘들다’가 아니라 ‘여자 상사와 힘들다’고 하셨다는 점입니다. 이 고생의 이유에 ‘상사가 여자여서일까’란 전제가 느껴지는데요. 10여년 직장생활 중 처음 여자 상사를 만나게 되는 주인공의 느낌은 어떠셨을까요? 이성적으로는 남자 상사와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일을 해오셨겠지만 이미 여자 상사라는 새로운 변수에 영향을 받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여자 상사분도 반대편에서 비슷한 입장일 텐데, 게다가 이분이 그런 위치까지 오르는 동안 직장 내 남자들 때문에 속상한 경험들이 많았다면 상황은 더 안 좋겠지요. 한동안은 괜찮다가 ‘사소한 다툼’ 이후 관계가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질문에는 이 다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여기서부터는 이런저런 추정을 해봐야겠습니다. 아마도 여자 상사에게는 그 다툼이 주인공에 대한 그간의 부정적인 선입견이나 자기 불안감이 옳았구나 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난 잘 모르겠는 내 어떤 점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가정입니다.
내 어떤 면이 이 여자 상사를 건드린 걸까요? 한 가지 가설은 처음 만난 여자 상사와의 불편감이 반대 성의 권위 대상에 대한 나의 반복되는 태도와 관련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여자 선생님 (저에겐 아내까지, 후후) 등과 같은 대상들이 있을 텐데요. 과거 그분들과의 관계를 되짚어 볼까요? 10년 넘게 외국계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온 당신은 혹시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노력해왔던 능동적인 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한 노력과 그 결과 얻어진 유능함은 물론 분명한 장점이시고요.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발전시키는 데 작용했을 여러 동기 중에는 이 여성분들로부터 받았던 간섭과 지적이 싫어서란 것도 있지 않았을까요? 스스로 잘한다면 그 싫은 경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비약하자면 ‘내가 잘할 테니 날 가만 내버려 두세요’라거나 ‘더는 나한테 뭐라지 마세요. 이젠 내가 알아서 훨씬 잘하니까요’라는 심정으로…. 새로운 여자 상사의 등장 후에도 장점은 여전히 업무에서는 통하고 있었겠으나 풍기는 태도에는 혹시 이런 과거의 숨은 의도가 묻어났을 수도 있겠죠.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거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란 느낌을 주거나 그러다 심지어 실제로 내가 더 낫다는 걸 증명이라도 해 버리셨다면…. 이러한 나의 숨은 의도는 첫 만남 때부터 은연중에 풍겼을 수도 있고 사소한 말다툼 중에 드러났을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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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소의 심심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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